[휴대전화 도청가능]거짓말… 거짓말… 누가 정부 믿겠나

  • 입력 2005년 8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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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부가 결국 휴대전화 도·감청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동안 줄곧 “휴대전화는 도·감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던 정통부는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보기술(IT) 주무 부처로서의 정책 신뢰성도 크게 떨어졌다.

국가정보원의 ‘휴대전화 도청 고백’에 이어 정통부도 뒤늦게나마 기술적으로 도청 가능성을 시인함에 따라 김대중(金大中) 정부와 현 정부에서 휴대전화의 도·감청 가능성을 부인했던 전현직 정부 고위 인사들에 대한 위증 논란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또 과거 국정원의 불법 감청(도청)에 대한 검찰 수사 확대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정통부 “휴대전화 도·감청, 국가기관은 된다” 시인

진대제(陳大濟) 정통부 장관은 16일 ‘휴대전화 안전성 제고(提高)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국가기관이 아닌 개인이 휴대전화를 도청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휴대전화 도·감청이 어렵긴 하지만 국가기관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으면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누구도 불가능하다’에서 한발 물러선 것.

진 장관은 “무선 구간은 기지국 수준의 이동식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도청이 어렵지만 국가기관이라면 가능하다”고 밝혔다.

특히 유선 구간의 경우 ‘어렵지 않게’ 감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끼리 통화할 때도 휴대전화와 근처 기지국은 무선으로 연결되지만 나머지 구간, 즉 기지국∼기지국이나 기지국∼교환국 구간은 유선으로 연결된다.

진 장관은 “국내 200여 이동통신 교환국의 교환기에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덧붙이기만 하면 특정한 번호를 지정해 휴대전화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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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 행진…정부 신뢰성에 먹칠

DJ 정부는 물론 현 정부에서도 정통부 장관을 비롯해 정부 고위 인사들은 입만 열면 “휴대전화 도·감청이 불가능하다”고 말해 왔다.

휴대전화 도청 의혹을 제기했던 본보 보도에 대해 2002년 10월 국정원이 소송을 제기했을 때도 정통부는 ‘휴대전화 도·감청 불가론’으로 국정원을 ‘지원’했다.

이동통신 주무 부처 장관이 공식 시인하면서 전현직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이 모두 거짓말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따라 그동안 거짓말을 해 온 인사들에 대한 위증 논란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들 가운데는 일주일 전까지 ‘불가능하다’고 얘기해 온 진 장관은 물론 전직 정통부 장관과 국정원장들이 대거 포함된다.

DJ 정부 당시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林東源) 씨는 “휴대전화는 감청이 불가능하며 감청장비 구입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신건(辛建) 천용택(千容宅) 전 국정원장도 국회에서 “도청을 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또 정통부 장관을 지낸 남궁석(南宮晳) 안병엽(安炳燁) 씨도 휴대전화의 도·감청 가능성을 부인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陳장관 왜 시인했을까▼

정보통신부가 휴대전화 도·감청 관련 장관 브리핑이 있다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린 것은 16일 오전 9시. 브리핑까지 불과 1시간 반을 남겨둔 때였다. 미리 배포됐던 공식 일정에 따르면 진대제 장관은 지방 출장이 예정돼 있었다. 그만큼 이날 발표는 갑작스레 이뤄졌다.

진 장관은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직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휴대전화 도·감청이) 이론적으로 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주 어렵다”고 부인했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 도대체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5일 국가정보원 고백 이후 정통부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국가기관이 ‘했다’고 시인한 마당에 ‘불가능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졌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하지도 않은 일을 고백할 리가 없다고 보면 둘 중의 하나였다. 정통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기술적으로 무지하거나.

더욱이 보안업계에서 “가능하다”는 증언이 잇따르면서 정통부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됐다. 심지어 일부에선 “국정원이 기술이 더 뛰어나니 정통부가 일부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도 나왔다.

정통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정원 발표 이후 10일간 휴대전화의 통화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와 업계 종사자의 의견을 듣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17일로 예정된 정통부의 국회 결산 보고를 하루 앞둔 시점에 발표가 이뤄진 데 대해서도 말이 많다.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통부 장관의 위증 문제가 집중적으로 부각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3750만 휴대전화 이용자보다 의원들의 질타를 더 두려워하는 행태가 아쉽다는 시각도 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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