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뮤지컬 ‘돈키호테’

  • 입력 2005년 8월 1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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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사진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돈키호테’는, 어찌 보면 스스로가 ‘돈키호테적’인 뮤지컬이다.

가볍고 말랑말랑한 남녀의 연애 이야기가 흥행 공식처럼 돼 있는 것이 요즘 국내 뮤지컬 시장의 현실이지만, 이 작품은 묵묵히 ‘꿈과 이상’ 그리고 ‘정의’를 노래한다.

탄성을 자아내는 마술 같은 무대도, 화려한 의상도 없다. 주인공도 멋진 선남선녀가 아닌 흰 수염을 기른 늙은이다. 여기에 2시간 15분의 휴식 없는 공연시간! 이런 작품을 1200석 대극장에서 한 달간 공연한다는 것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현실은 진실의 적”이라는 극중 돈키호테의 대사처럼, 뮤지컬 ‘돈키호테’는 뮤지컬계의 현실에 맞서 ‘좋은 작품은 관객을 부른다’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작품은 어두운 지하 감옥에 ‘돈키호테’라는 소설을 쓴 젊은 작가 세르반테스와 그의 시종이 갇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세르반테스는 죄수들을 배우로 삼고 자신이 ‘돈키호테’ 역을 맡아 감옥에서 즉흥극을 펼친다.

젊은 세르반테스와 노인 돈키호테의 1인 2역을 매끄럽게 해 낸 류정한은 ‘인생의 깊이가 묻어나야 하는 돈키호테 역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까’라는 당초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깨끗이 증명했고, ‘산초’ 역의 김재만도 제 몫을 온전히 해 냈다.

연출과 관련해서 여주인공 알돈자가 윤간 당하는 장면을 굳이 그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이 작품의 ‘공식 관람 연령’은 ‘8세 이상’이다). 돈키호테의 정신이 황폐해지게 만드는 ‘거울 방패’ 대목에서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흠.

뮤지컬 ‘돈키호테’의 힘은 400년간 사랑받아 온 탄탄한 원작 소설에서 나오지만, 이를 감동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주옥같은 멜로디의 음악이다. 특히 4번(커튼콜 포함)에 걸쳐 나오는 테마곡 ‘이룰 수 없는 꿈’은 백미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싸움, 이길 수 없어도/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정의를 위해 싸우리라/사랑을 믿고 따르리라/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상을 좇는 돈키호테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객석은 숨죽인 듯 조용해진다. 후반부에서 죽어가는 돈키호테가 이 곡을 부를 때는 슬픔과 눈물로, 피날레곡으로 전원이 이를 합창할 때는 벅찬 감동으로 객석이 뒤덮인다. 커튼콜 때 류정한이 다시 이 곡을 부를 때면 기립박수가 쏟아진다. 현실에서는 종종 이상이 무릎을 꿇기 때문일까? ‘돈키호테적’ 뮤지컬의 성공을 보는 것은 즐겁다. 2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3만∼9만 원. 02-552-2035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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