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全斗煥), “차라리 암살범을 시켜 죽여라”=1988년 5공을 향한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1월 8일 연희동 자택에서 만난 전 전(前) 대통령은 분노했다. “내가 무리해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는데 사과하고 재산 헌납하고 낙향하라고 하는 것은 죽어 달라고 하는 것보다 더한 짓이다. 차라리 암살범을 시켜 후임자가 선임자를 죽이는 것이 깨끗하다.”
전 전 대통령은 “이제는 나도 싹 쓸어버리겠어. 나도 양심선언 하겠어. 김대중(金大中)이가 잡든, 김영삼(金泳三)이가 잡든…”이라며 “형님(전기환 씨)이나 처남(이창석 씨)까지 잡아넣겠다는 것은…. 노태우가 말 한마디 없이 그런 식으로 하면 나한테 귀싸대기 맞는다. 둘 사이가 원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흘 뒤 전 전 대통령은 나를 연희동으로 불러 “대선 때 정치자금은 25명으로부터 1010억 원을 걷었으나 실제 (쓴) 자금은 두 배 이상 들었다. 약속한 금액과 실제 헌금 명단이 있다. 그 이전에는 따로 받은 것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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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 대통령은 또 노 대통령과 통화(11월 2일)했다며 그 내용을 전했다. “이원조(李源祚·전 은행감독원장)는 내가 많이 걷고 적게 내놓은 것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A 그룹 같은 데는 50억 원을 약속하고도 10억 원만 냈다. 확인해 봐라. 삼족(三族)을 멸하는 식으로 하니 견딜 수가 없다.”
11월 15일 노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알려줬다.
“최병렬(崔秉烈)이 ‘1000억 원을 인계해 주고 나머지가 있을 테니 내놓으라’고 한다는데 환장할 일이다”(전), “살신성인하면 뒤는 내가 보장한다. 나를 믿으라”(노), “나중에 만날 때 술이나 한잔 주라”(전).
▽“DJ는 믿을 수 없다”, “YS는 늙었다”=1988년 9월 21일 상도동 자택에서 나는 YS와 독대했다. YS는 “노 대통령에게 신뢰의 감정을 느낀다”며 “DJ는 믿을 수 없고 좌경화의 우려가 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1989년 1월 17일 연두기자회견 후 나를 불러 “DJ를 만나 ‘영호남이 합쳐지면 당신은 영웅이 된다. 극단적으로 나가면 지역 당수에 불과하다’고 유도하라”고 지시했다.
다음 날 동교동 지하 서재에서 DJ와 만나 3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DJ는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에서 지금도 도청을 하고 편지를 검열하고 있다. 안기부가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내가 YS보다 건강하다. YS는 운동을 너무 많이 해 늙는 것 같다. 내가 만 65세지만 대통령을 한 텀(임기)은 할 수 있는 건강이다”라고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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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평가 1500억 원 모금 시도=1989년 3월 10일 대그룹 모 회장이 급히 나를 찾아왔다.
그는 “3월 8일 5대 그룹 총수를 비롯해 재계 인사 8명이 청와대 만찬 행사를 마치고 살롱 ‘반줄’로 옮겨 술을 한잔 했다. 그 자리에서 ‘안기부 주관으로 롯데호텔에 방을 잡아놓고 (중간평가를 위한 국민투표 비용으로) 1500억 원을 모금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내게 귀띔해 줬다.
다음 날 이를 보고하니 노 대통령은 “자네가 어떻게 그 일을 아느냐”며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노 대통령의 중간평가 공약은 3당(민정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합당과 함께 물 건너갔다.
▽“문익환(文益煥) 목사의 방북은 DJ 작품 의심?”=1989년 3월 25일 문 목사의 방북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안정국이 시작됐다. YS 측의 황병태(黃秉泰) 의원은 “문 목사가 DJ를 만나고 전격적으로 방북을 결정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황 의원은 “3월 20일 YS는 출타하려다 비서실에 대기 중인 유원호(당시 통일민주당 당원으로, 문 목사와 함께 방북했던 사람)에게서 ‘문 목사가 방북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알았다’고만 답변했다”며 YS와의 무관함을 거듭 강조했다. 김덕룡(金德龍) 의원도 “YS는 그 얘기를 건성으로 듣고는 혹시 DJ 측의 공작이 아닌지 의심했다”고 말했다.
▽“JP는 체면만 세워주는 방향으로 해라”=1989년 3월 4일 노 대통령은 내게 “만약 YS가 차기 대권에 관심이 있으면 여당으로 들어와 기반을 닦고 대권을 쥘 길을 뚫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 이미 노 대통령에게서 “신격호(辛格浩) 롯데그룹 회장과 YS는 오래전부터 가까운 사이다. 신 회장을 자주 만나 올바른 정보도 파악하고 YS에게 합당을 권유하라고 부탁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7월 18일 롯데호텔 일식당에서 만난 신 회장은 “YS의 합당 의사는 분명하다. 그 전제로 정호용(鄭鎬溶) 이원조의 용퇴를 주장하고 있다”며 “내각제 개헌을 통해 YS가 수상(총리), JP가 대통령을 하고 그 다음에는 민정당이 해야 한다”고 했다.
3당 합당은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9월 27일 박준규(朴浚圭) 민정당 대표 등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2년 정도는 양 김씨에게 수상이 될 찬스를 주고 그 다음에 순수 민간인에게 국정을 맡겨야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또 10월 3일 박 대표 등과의 오찬에서 “JP는 꼭 집권하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체면만 세워 주는 방향으로 해라. YS는 꼭 집권하겠다고 하는데 ‘시간을 끌면 너는 아무것도 안 된다. 불안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JP와 손잡을 수밖에 없다. JP에게 다 주겠다. 그러면 YS 너는 꼴찌가 될 것이다’라고 승부수를 던질 시점이다. YS가 DJ와 손잡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1989년 10월 15일 상도동 자택에서 YS를 만났다. 그는 민주당 내 야권통합 움직임이 신경 쓰이는지 “최형우(崔炯佑) 장석화(張石和)는 몹쓸 인간이다. 두 사람 외에는 반대 세력이 없고 노무현 의원은 당을 떠나도 무관하다”고 잘라 말했다.
▽노(老) 총리의 눈물=1989년 10월 21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전날 귀국한 노 대통령이 청와대 고위당정회의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귀로에 신문을 보니 3김씨가 정권 퇴진 운운하며 악수하는 무의미한 사진이 톱이었다. 대통령 할 생각이 없어지더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에 강영훈(姜英勳) 총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외국에서 밤잠 설치며 나라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데 송구스럽다”고 했고, 박 대표도 울먹이며 “연말까지 당이 책임지고 5공문제를 종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 朴씨 회고록 관련 당사자 반응
박철언 전 의원의 회고록 내용이 보도되자 회고록에 거론된 당사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박 전 의원이 3당 합당을 전후해 40억 원을 전달했다고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 측근은 “노태우 정권 시절부터 박 전 의원은 입만 열면 YS를 음해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일 아니냐”며 “YS가 회고록에 대한 보고는 받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YS의 또 다른 측근은 “박 전 의원은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YS를 원망했지만 정작 YS는 대통령 재임 중 광복절 사면대상에 박 전 의원이 빠져 있자 직접 ‘박철언을 넣어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5공 시절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 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6년 친위 쿠데타를 생각했다는 회고록 내용에 대해 “당시 시국 걱정을 하다가 이런저런 말이 나왔을 수는 있겠지만 친위 쿠데타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며 사실관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5공 때 박 전 의원은 황태자도 아니었고 중요한 결정 라인에도 없었다”며 “회고록에도 자기의 잘못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못 믿을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전 전 대통령 측 이양우(李亮雨) 변호사는 “전 전 대통령이 내용을 알고 있는지, 무슨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라고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5공 시절 미국에 갈 때 전 전 대통령이 DJ에게 7만∼8만 달러를 주었다는 회고록 내용에 대해 DJ 측 최경환(崔敬煥) 비서관은 “회고록에 대한 DJ의 언급은 일절 없었다”라고 말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요직에 있었던 한 인사는 “박 전 의원은 자기중심의 주관적 판단을 많이 한 것 같다”며 “월계수회를 관리할 때 돈 문제로 물의를 빚어 노 대통령의 질책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내용은 보이지 않더라”고 지적했다.
한편 검사 시절 ‘슬롯머신’ 사건으로 박 전 의원을 구속했던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그는 자기과시가 심한 사람이어서 어느 정도 과장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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