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르포]매향리 美공군사격장 역사속으로

  • 입력 2005년 8월 12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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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군의 폭격연습장인 경기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가 12일 반세기여 만에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연습장 폐쇄를 하루 앞둔 11일 주민들이 미군이 남겨놓은 녹슨 포탄 탄피 더미를 살펴보고 있다. 화성=안철민 기자
미국 공군의 폭격연습장인 경기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가 12일 반세기여 만에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연습장 폐쇄를 하루 앞둔 11일 주민들이 미군이 남겨놓은 녹슨 포탄 탄피 더미를 살펴보고 있다. 화성=안철민 기자
‘드디어 54년 만에 미군 폭격 완전 중단.’ ‘매향리 승리, 매향리 평화, 매향리 만세.’

11일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경기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에는 이 같은 내용의 대형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1951년 6·25전쟁 중 미 공군사격장으로 조성돼 1955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군전용 폭격연습장이 된 매향리 사격장(일명 쿠니 사격장·육해상 전체 719만 평)이 12일 오후 1시를 기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매향리 마을은 조용하지만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움직였고 주민들의 얼굴엔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직도 미 공군 사격을 알리는 황색깃발이 사격장 육상기지 철조망 너머로 보였지만 빛이 바랜 듯했다.

이날은 기상악화로 미군 전투기의 폭격은 없었다. 그러나 ‘매향리 미 공군 국제폭격장 철폐를 위한 주민대책위’ 사무실 앞에 수북이 쌓인 포탄껍데기와 해안에서 1.2km 떨어진 폭탄 투하장 농섬의 잘려 나간 흉한 모습은 매향리의 아픈 상처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대책위 사무실에선 주민들의 몸놀림이 분주했다.

미군 사격이 공식적으로 중단되는 12일 오후 1시에 열리는 기자회견과 오후 7시에 열리는 미군 폭격 완전 중단 주민 대잔치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매향2리 이정원(44) 이장은 “최근까지 사격장 폐쇄에 대해 국방부가 확인을 해 주지 않아 반신반의했었다”며 “주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들던 폭격 소리가 멈춘다니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800여 명이 참가하는 주민 대잔치의 가장 뜻 깊은 행사는 ‘평화의 깃발’을 올리는 일.

대책위는 “미군 사격을 예고하는 황색깃발을 내리고 대책위 사무실 앞에 가로 2m, 세로 3m 크기의 하늘색 평화의 깃발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철조망 영문사격표지판 옆에 같은 크기의 평화마을 조성 예정지 간판도 내걸기로 했다.

대책위 전만규(全晩奎·49) 위원장은 “최근 사격장 폐쇄 소식을 전해 듣고는 정말 새 생명이라도 얻은 기분으로 며칠 동안 잠도 자지 못했다”며 “이제 포탄 더미의 상흔을 말끔히 씻어내고 마을을 가장 평화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데 모든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대책위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은 우선 육상기지 29만 평에 평화공원과 평화박물관이 들어서는 평화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 대책위 사무실을 포함한 2000평에는 의료시설과 노인재활시설, 보육시설, 장례식장 등이 포함된 주민 종합복지관을 지을 계획이다. 주민들은 올해 1월 배상받은 돈을 갹출해 5억 원을 마련, 땅 구입비 20억 원 중 일부를 치렀다.

한편 국방부는 이날 “15일부터 30일까지 매향리 농섬 일대에서 불발탄 등 폭발물 처리작업을 한 뒤 이달 말 사격장을 완전 폐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매향리 사격장의 대체 부지로는 전북 군산 앞바다의 직도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직도 주민들은 “직도는 1980년대부터 한국 공군과 미 공군 폭격연습장으로 사용되면서 큰 피해를 보아 왔다”며 직도 사격장 자체를 폐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화성=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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