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는 도청 못한다더니… 뒤로는 장비 개발

  • 입력 2005년 8월 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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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과 그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는 1996년 1월부터 2002년 3월까지 자체 개발하거나 해외에서 수입한 감청 장비를 이용해 아날로그 방식뿐 아니라 디지털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휴대전화를 불법 감청(도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디지털 휴대전화 이동식 감청=국정원은 1999년 12월 휴대전화 사용자와 200m 이내 거리에 있으면 무선으로 통화내용을 감청할 수 있는 장비를 자체 개발했다. 무게가 45kg에 불과해 차량에 싣고 옮겨 다닐 수 있었다. 국정원은 총 20세트를 생산해 도청에 사용했다.

이 장비는 휴대전화 사용자가 통화를 하면서 이동해 이동통신회사 기지국이 바뀔 경우 감청이 중단되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또 휴대전화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 개발된 CDMA-2000 방식의 휴대전화에 대해선 감청이 안 됐다. 이에 따라 2000년 9월부터 사용이 중단됐고 2002년 3월 20세트가 모두 폐기됐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디지털 휴대전화 유선중계망 감청=국정원은 1998년 5월 이동통신회사의 기지국 간 유선 구간을 연결하는 회선에 접속해 감청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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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사용자의 통화내용이 한 기지국에서 다른 기지국으로 중계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유선구간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 낸 장비다. 주로 CDMA 방식 휴대전화 감청에 사용됐다.

국정원은 5일 “당초 이동통신이나 공항 및 항만의 중계통신망을 대상으로 국가안보와 관련된 통신첩보를 수집할 목적으로 6세트를 제작했으나 일부 도청에도 활용됐다”고 밝혔다.

이 장비 1세트를 작동시켜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회선은 20개로, 6세트를 한꺼번에 운용해 동시에 최대 120회선의 통화를 감청할 수 있었다. 3년 11개월 동안 사용됐으며 2002년 3월 전량 폐기했다는 것.

▽아날로그 휴대전화 감청=국정원은 1996년 1월 이탈리아에서 아날로그 방식의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는 장비 4세트를 들여왔다. 이 장비는 휴대전화 사용자를 중심으로 200m 반경 내에서 통화내용 감청이 가능했다.

국정원은 “1999년 12월 아날로그 휴대전화 서비스가 중단된 뒤 장비를 모두 폐기했다”고 밝혔다.

▽현재 활용 가능한 휴대전화 감청 기술 및 방식=국정원에 따르면 이동통신회사 교환국 교환기에 감청장비를 설치할 경우 얼마든지 휴대전화 통화내용의 감청이 가능하다.

국정원 관계자는 “대부분 선진국의 경우 이동통신사업자 교환기에 감청장비를 설치하도록 법제화돼 있어 수사기관이 감청영장을 받으면 이동통신사업자가 감청한 결과를 수사기관에 넘겨주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에 따르면 삼성과 LG는 교환기에 설치하는 감청 장비를 개발 생산해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또 “휴대전화 사용자를 추적하며 일정한 거리 내에서 무선으로 통화내용을 감청할 수 있는 기술도 있다”고 밝혔다.

이는 국정원이 개발한 휴대전화 이동식 감청장비가 CDMA-2000 방식에는 감청이 안 돼 2002년 3월 폐기됐지만, 이미 이를 감청할 수 있는 이동식 감청 기술이 새로 개발됐다는 뜻이다.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현재 시중에 보급된 휴대전화 중 87%가 CDMA-2000 방식이다.

그러나 정보통신부 양환정(梁煥政) 통신이용제도과장은 “국정원이 했다는 휴대전화 감청은 매우 제한적인 조건에서 제한적인 수준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복제 휴대전화 감청 여부=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일부 의원은 복제된 휴대전화를 이용한 감청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한때 휴대전화와 그 휴대전화를 복제한 제품이 20m 이내 거리에 있을 때 전화가 걸려오면 일시적으로 두 전화기에서 같은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3년 10월 이동통신회사들이 통신설비 시스템을 개선해 2대의 전화에 통화가 동시에 접속되는 결함이 해소됐다는 게 국정원의 설명. 국정원은 “2002년 3월 이전 휴대전화 감청이 시행되던 때나 그 이후에도 복제 휴대전화를 이용한 감청은 시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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