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예산 모자라 사업 제자리

  • 입력 2005년 8월 4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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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러시아 연해주 지방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등지에 사는 한인들은 그들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

일제강점기 때 해외 독립투쟁의 본거지였지만 1937년 스탈린이 18만 명의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이후 뿔뿔이 흩어져 현재 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4만여 명.

남한식 한인도 아니고, 북한식 조선인도 아닌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 고려인들의 역사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조국과 단절된 ‘뿌리 없는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난해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을 전후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러 관계 개선 이후 한국 정부 및 시민단체들의 지원과 협력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러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 기념관 사업=지난해 러시아 정부령(令)에 따라 ‘러시아 연방 고려인 이주 140주년 위원회’가 결성된 직후 192명의 연해주 고려인들의 청원으로 본격화된 1000여 평의 규모에 총예산 60억 원 이상이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

기념관이 들어설 곳은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내정됐다. 연해주 전체 고려인의 절반인 2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우수리스크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한다. 최근엔 고려인 2명이 시의원으로도 당선돼 더욱 의미가 깊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사업 초기 기념관 건립이 예정됐던 시기는 내년 10월경. 그러나 예상치도 못했던 난관에 부닥치며 완공은 최소 1년 이상 늦어질 전망이다.

일단 한국 정부가 지원키로 한 예산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첫 번째 이유. 지난해 12월 정부에서 10억 원 정도를 지원키로 여야 간 잠정 합의가 이뤄졌으나 올해 초 국제교류법이 개정되면서 예산 집행의 절차 및 감사 문제 등으로 시일이 늦춰졌다.

문제는 기념관 건물 구입 잔금을 치를 기한이 이달 말이라는 점. 지난해 재외동포재단에서 5억 원을 지원받아 건물 구입에 보탰지만 만약 기한 내 잔금 3억 원이 지급되지 않으면 건물 자체를 반납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동북아평화연대 측에 따르면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면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 관계자들의 호소에 국제교류재단과 재외동포재단 측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온 것.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원 자금의 한 축을 담당하는 민간모금이 예상보다 너무 저조한 것. 최소 30억 원 이상이 모여야 하지만 현재 지원물품을 합쳐도 5억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동북아평화연대의 황광석(黃光石) 사무국장은 “국내 모금으론 한계가 있어 해외동포들을 대상으로 기금 마련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조국을 잃고 떠돌던 러시아 한인들의 슬픈 역사를 생각해서라도 뜻있는 이들이 많이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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