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대근]존 애덤스와 盧대통령의 선택

  • 입력 2005년 8월 4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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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민에게 존 마셜을 선물한 것이 내 생애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1801년 마셜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한 미국 2대 대통령 존 애덤스가 퇴임 후에 한 말이다. 그때 우리 땅에서는 조선 정조(正祖)가 승하하고 세도정치(勢道政治)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니 2세기 전 애덤스의 말을 되새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사법제도의 연원(淵源)을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느 미국 대법관은 “미국의 법을 대표하는 오직 한 인물을 꼽는다면 바로 마셜”이라고 했다. 1990년 미국의 법학자, 법조인,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도 마셜은 연방대법원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법관으로 뽑혔다.

마셜이 2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법치주의(法治主義)의 확립이다. 그는 34년간 대법원장직을 수행하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연방대법원이 연방의회나 주(州)의회가 만든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권한도 마셜의 판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한국 법조계 안팎에선 다음 달로 6년 임기가 끝나는 최종영 대법원장 후임에 대한 관심이 비상하다. 대법원장 임명은 국회 동의 절차를 밟게 돼 있지만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관심의 초점은 ‘코드 인사’ 여부다. 노 정부는 서열위주의 인사 관행 타파를 강조해 왔고 사법부도 예외일 수 없다는 흐름이 대법관 인사에서 이미 드러났다. 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온 운동가 단체들은 대법원장 인선에서 대법관 출신은 무조건 배제해야 한다는 초법적 주장과 함께 대법원 물갈이를 압박하고 있다. 대법관 14명 중 9명이 내년 7월까지 임기가 끝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여론몰이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쥐고 있고, 따라서 자신들과 뜻이 같은 인물이 사법부 수장이 되면 대법원의 색깔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계산인 것 같다.

노 대통령도 판갈이식 인사로 자신의 임기 중 사법개혁을 마무리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제동이 걸린 쓰라린 경험이 있는 데다, ‘거대 야당’의 반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그만의 피해의식이 대법원장 인선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지역구도만 해소할 수 있다면 야당에 정권도 내놓겠다는 판이니 무슨 생각인들 못하겠는가.

다시 애덤스 대통령과 마셜 대법원장의 경우를 보자. 마셜은 미국의 법으로 남게 된 ‘영속적이고 체계적인 판결’을 통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쌓았고, 애덤스 대통령은 이런 인물을 대법원장으로 선택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설령 국민이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판결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전통을 세운 것이다.

노 대통령이 내놓아야 할 정답은 간단하다. 코드 인사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분명한 ‘코드 인물’은 물론이고 코드가 같은 것으로 비치는 인물도 곤란하다. 3권분립의 핵심인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아서는 그 어떤 개혁도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초의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니만큼 다른 것은 몰라도 사법부 독립의 초석은 확실히 다졌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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