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필렬]석유가 얼마 안 남았다면

  • 입력 2005년 7월 30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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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먼스 에너지투자회사 회장인 매슈 시먼스는 미국의 석유 전문가다. 그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에너지 자문 역까지 맡았을 정도로 세계 석유 현황에 대해 매우 박식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몇 년 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유전이 쇠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경고하더니 얼마 전에는 “올해 10월경에 인류가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석유 생산이 수요를 맞추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때 석유 수요는 약 8700만 배럴이 될 터인데, 생산은 8500만 배럴 정도밖에 안 되리라는 게 그의 계산이다. 세계의 석유 수요는 증가하기만 하니 부족은 상시적인 현상이 될 것임은 물론 점점 심해질 것이다.

시먼스처럼 비관적이진 않더라도 2010년이 넘어가기 전에 석유 부족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전문가는 꽤 많다. 지난 1년 반 동안 국제 유가가 계속 상승한 탓에 상당수의 석유분석가가 낙관에서 비관으로 선회한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에서조차 관련 보고서를 내놓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작년에는 펜타곤(미국 국방부)에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이번에는 석유 부족의 충격을 분석하는 보고서가 에너지부에서 나온 것. 에너지부의 보고서 내용은 시먼스 같은 전문가들의 경고보다는 부드럽다. 그렇지만 이 보고서에서도 석유 부족의 시작을 2015년으로 잡고 있으니 석유를 지금처럼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날도 몇 년 남지 않은 것 같다.

석유 부족이 닥치리라는 경고의 근거는 무엇일까? 땅속에 묻혀 있는 석유의 한정된 매장량이 근거로 이용되는데, 시먼스같이 이제 곧 닥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설명한다.

그가 우려의 근거로 삼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 현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매일 전 세계 석유 생산의 약 12%에 달하는 1000만 배럴의 석유가 생산되는데, 그중에서 거의 90%가 다섯 개의 아주 오래된 유전에서 나온다. 이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이 가와 유전으로, 여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의 60% 이상이 생산된다. 그렇다면 가와 유전에서 석유가 제대로 생산되지 않는다면 세계 석유 수급도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바로 이 가와 유전이 믿을 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와 유전의 유정들은 대부분 아주 오래전에 발견되었고, 오래전부터 석유를 내놓았다. 유전은 처음에는 땅속의 압력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 압력의 힘으로 석유가 저절로 솟구쳐 오른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나면 압력이 떨어지는데, 압력 유지를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물을 계속 퍼붓는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한다.

가와 유전도 예외가 아니다. 유전 속에는 많은 양의 물이 들어 있고, 계속 들어가는 물로 인해서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압력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유전의 압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때가 되면 석유 생산은 쉽지 않다. 만일 가와 유전에서 압력이 떨어진다면 세계 석유 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일 것이다. 세계 석유 생산량의 6%에 달하는 가와 유전의 석유를 다른 유전에서 보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충격은 자명하다. 석유 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더 올라가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지금보다 더 많은 석유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한국같이 전체 에너지의 50%가량을 석유에 의존하고 이 석유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일은 우리 대다수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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