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차수]신문법에 대한 환상

  • 입력 2005년 7월 22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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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은 ‘신문법’(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이 28일 발효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이 법에 대한 헌법소원 3건의 심리를 시작한 데다 한나라당이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혀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문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가 신문시장에 개입해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신문법 제정 목적으로 신문 발행의 자유와 독립 보장, 언론의 자유 신장, 민주적 여론 형성, 언론의 건전한 발전 및 독자의 권익 보호 등을 내세웠다. 특히 정부 여당 인사들은 ‘여론의 다양성 보장’을 위해 신문법이 필요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이런 주장은 구실에 불과하고 속내는 동아일보를 비롯한 메이저 신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다. 정부 여당이 비판적인 메이저 신문을 보수신문으로 규정해 끊임없이 공격했던 것과 ‘여론의 다양성 보장’ 주장을 연결하면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메이저 신문 주도의 비판 여론을 줄이는 대신 친정부 신문을 키우겠다는 얘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 제한 규정(3개 이하 신문사가 전국 발행 부수의 100분의 60을 넘을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제)을 도입한 것은 바로 메이저 신문사를 겨냥한 족쇄다. 반대로 신문발전위원회와 신문유통원 설립 규정은 배달망 등 인프라가 부실한 마이너 신문사를 도와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마이너 신문은 정부 지원으로 독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지 신문법 제정에 찬성했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 6개 신문사는 신문유통원 설립을 위해 정부 예산 1651억 원을 지원해 달라는 의견서를 문화관광부에 내기도 했다.

하지만 신문법에 거는 정부 여당의 기대는 환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오랜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독자들은 배달망 등 외적 요인이 아니라 논조와 기사의 충실도 등 콘텐츠를 신문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마이너 신문의 인프라를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이 이런 신문을 선택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얘기다.

설사 정부 지원 덕분에 마이너 신문의 독자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문제다. 정부의 도움을 받은 신문이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과 견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건전한 여론 형성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문사들이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체 가구 중 신문 구독 가구는 40%대로 떨어졌다. 게다가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이들 중에는 신문을 읽지 않는 사람이 점점 더 늘고 있다.

독과점 문제는 신문보다 방송이 훨씬 심하다는 점에서 정부 여당이 정말로 신문을 살리고 여론을 다양화할 생각이 있다면 목표와 수단을 바꿔야 한다.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 메이저 신문 독자를 줄여 마이너 신문 독자를 늘리는 식의 신문사 간 ‘파이 싸움’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런 식의 대응으로는 여론의 다양성도 언론의 자유도 보장할 수 없다. 신문이 제 기능을 못하면 민주주의도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여당은 하루빨리 신문법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젊은 독자 확대 등 전체 신문시장을 키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김차수 문화부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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