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보광/연꽃과 무소의 뿔

  • 입력 2005년 7월 22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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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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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도량에 핀 연꽃을 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돌아보면 여기저기서 우산 같은 큰 연잎이 바람에 날려 파도처럼 출렁이고, 상큼한 향기가 온 도량에 가득하다.

연꽃과 연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연잎은 새벽이슬까지도 옥 방울처럼 떨어뜨려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연잎에 물이 고이면 모아두지 않고 비워 무소유를 깨닫게 한다. 더구나 잎에 내리는 비는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빗소리를 들려준다.

큰 잎을 가느다란 외줄기가 받치고 있지만, 속을 텅 비워 바람에 거슬리지 않기 때문에 부러지지 않아 마음 비우는 법을 가르쳐준다. 처음 새싹을 틔울 때도 자신의 큰 뜻을 나타내지 않고 송곳처럼 뾰족하게 내밀어 남과 다투지 않는 지혜를 일러준다. 한 줄기에 잎은 하나뿐이지만, 외로워 보이진 않아 ‘무소의 뿔’처럼 홀로 사는 법을 터득하게 한다.

이른 새벽 마음을 비우고 귀를 기울이면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나 작은 소리여서 번뇌가 일어나면 순식간에 놓치게 되므로 정신 바짝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핀 꽃 속에 이미 열매가 맺어져 있으므로 부모와 자식이 둘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나비와 벌이 오지 않아도 되건만, 불청객이 찾아와도 쫓아내지 않아 너그러움을 가르쳐준다.

꽃이 피는 줄기에는 잎이 없으며, 오로지 꽃만을 피우기 위해 긴 목을 내밀어 고결함을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꽃은 속살을 드러내 보이지만 야하지 않고, 향기로운 내음은 도량에 가득하지만 진하지 않아 귀부인같이 우아하며, 고개를 들고 꽃을 피우지만 교만하지 않다.

잎을 따서 연잎국수를 만들어 먹고, 차에 꽃을 넣어 한 잔의 연향차(蓮香茶)를 우려내어 마시기도 한다. 마음의 번뇌는 염불로 식히고, 이 몸의 고단함은 한 잔의 차로 목을 축여 푼다.

연꽃과 같이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물들지 않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보광 스님·동국대 교수 경기 성남시 정토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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