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조각가 최종태씨 대전시립미술관서 회고전

  • 입력 2005년 7월 2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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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최종태 회고전에는 그동안 선보이지 않았던 파스텔 평면 작품들도 많이 나와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순수의 이미지로 조각이든 그림이든 소녀나 여인상을 주로 다뤄왔다. 1998년작 ‘얼굴’. 사진 제공 대전시립미술관
조각가 최종태 회고전에는 그동안 선보이지 않았던 파스텔 평면 작품들도 많이 나와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순수의 이미지로 조각이든 그림이든 소녀나 여인상을 주로 다뤄왔다. 1998년작 ‘얼굴’. 사진 제공 대전시립미술관
도심의 명소가 된 서울 성북동 길상사 경내 석조관음상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만들어 세간의 화제가 됐다. 게다가 관음상이 성모상과 닮았다는 평이 많아 여러모로 종교간 화합을 상징했다. 주인공은 내로라하는 성당, 수녀원에 성모상을 만든 대표적인 종교미술 조각가 최종태(73) 씨.

그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대전시립미술관 전시장도 마치 성소(聖所)처럼 꾸며졌다. 가운데 십자가를 중심으로 양쪽에 예수의 고난을 새긴 부조(浮彫) 연작이 있는 방은 관람객들을 침묵과 평안으로 이끈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1, 2 전시실 8개 방으로 이뤄진 전관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자칫 종교미술이라는 틀로 한정했던 작가를 명실상부 이 시대의 진정한 거장으로 각인시키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100여 점이 넘는 조각에 목판화, 드로잉, 파스텔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나온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조각상들은 예수 상을 제외하곤 대부분 소녀와 여인상이다. 그림을 그리려면 좋은 것을 그려야 하는데 밀레가 좋은 사람으로 농부를 택했듯 자신은 ‘소녀’를 택했다고 한다.

맑은 눈빛과 얼굴이 흡사 도인을 연상케 해 그에게도 자신의 내면을 할퀴었던 시절이 있었을까 싶은데, 전시장 초입 1970, 80년대 소녀상들을 앞에 두고 그는 뜻밖의 말을 했다.

“1985년에 파리 피악(FIAC) 전에 이것들을 내 놓았는데 한 서양 사람이 오더니 ‘왜 조각상 표정이 모두 슬프냐’고 물었다. 슬픈 마음을 지우려 그토록 노력했건만 속 감정이 그대로 형태에 묻어있는 것을 이국땅에서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1970, 80년대는 그의 나이 사십대와 오십대 초반이었다. 셋방살이 하다가 겨우 내 집을 마련한 때였고, 이화여대에서 서울대로 직장(미대 교수)을 옮겼고, 학교가 관악산으로 이사 갔고, 제자들은 매일 데모를 했다. 시대는 통탄스러웠고 삶이 무엇인지, 그림이 무엇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엄습해 온 방황과 허무, 시대의 분노와 좌절을 그는 오로지 작품으로 발산했다. 어떤 날은 밤새워 통음하다가도 정신이 깨면 미친 듯 망치로 돌을 쪼았다.

종교에 관심을 가진 것이 그 무렵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진실한 아름다움이란 희로애락을 넘어선 대 자유, 인간적인 것을 초월해 영원의 숨결과 하나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마침내 이 ‘절대 평정’이라는 ‘상태’를 조각으로 형상화하는 데 매달렸다. 차츰 작품들의 표정에서 슬픔이 없어졌다.

그는 ‘부지(不知)’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모르는 것, 답이 없는 것을 찾아 그렇게 힘들게 살았다. 그리고 진실에 이르는 길이 참으로 멀다는 것도 알았다. 진작 알았다면 더 천천히 살았을 것이다.”

“나는 예술가 이전에 사람”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어찌 예술에만 진실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다. 남들이 다 서양 것이 좋다고 좇을 때, 묵묵히 국내에 남아 순수 토종으로 한국미의 본질을 추구해 온 것도 그 진정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야기 말미에 그는 “나는 후진(뒤처진) 예술가”라고 했다. 옳고 그른 것이 있다고 믿으며 대꼬챙이 같은 정의감으로 살았던, 더구나 ‘영혼’을 고민해 왔던 이 예술가는 순수나 정의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지금이 버거운 듯 보였다.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손자가 있다”고 말할 때도 표정에 쓸쓸함이 비쳤다.

대전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20일 개막식에는 거장의 귀거래를 축하하는 200여 명의 지인들이 모여 따뜻한 우정을 나누었다. 8월 27일 오후 1시 ‘최종태의 예술세계’를 주제로 강의가 열린다. 전시회는 9월 7일까지. 042-602-3200

대전=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조각가 최종태씨는▼

△1952년 대전사범학교 졸업. 대전에서 초등학교 교사 재직

△1958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 졸업

△1959년 국전 입선

△1967년 이화여대 미대 교수

△1970년 서울대 미대 교수

△1973년 절두산 성지에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제작

△1998년 서울대 정년 퇴임

△2001년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2002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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