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그렇구나]잣대 다른 의사자 인정

  • 입력 2005년 7월 18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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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에도 이름이 필요한 것일까?

정부는 2003년 남극 세종기지에서 동료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출항했다 보트 전복으로 사망한 전재규 씨를 곧바로 의사자(義死者)로 결정했다. 의사자로 인정되면 유족 보상금 지급과 함께 국가유공자법에 의한 예우를 받게 된다. 정부는 또 같은 해 7월 영등포역에서 어린이를 구하다 두 다리를 잃은 철도공무원 김행균 씨도 바로 의상자(義傷者)로 결정했다.

이들의 희생은 매스컴 등이 널리 알렸으며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름 없는 희생에 대해서는 정부의 태도가 다르다.

▽‘희생은 자연스러운 행동’=경남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모 씨는 1997년 여름 학교 친구 3명과 함께 하천으로 물놀이를 갔다. 물고기를 잡던 일행 안모 씨가 풀에 걸린 투망을 풀기 위해 하천에 들어갔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정 씨가 손을 뻗었으나 정 씨 자신도 물에 빠져 숨졌다.

정 씨 유족은 보건복지부에 정 씨를 의사자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복지부는 거부했다.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도 13일 청구를 기각했다. 정 씨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사회통념상 자연스러운 행동일 뿐 특별한 자기희생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정부, 소송에서 져도 승복 안 해=단국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최영애(사망 당시 20세·여) 씨는 2003년 여름 동아리 친구들과 동해안으로 합숙훈련을 갔다. 물놀이를 하던 중 남학생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최 씨는 그 남학생을 구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러나 중간쯤 가서 최 씨도 갑자기 바닥이 움푹 파여 수심이 깊은 곳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동아리 회원들에게 구조됐으나 5일 후 사망했다.

최 씨 유족은 복지부에 최 씨를 의사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복지부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숨진 게 아니라 다가가다 파도에 휩쓸려 사망한 것”이라며 거부했다.

정 씨와는 달리 최 씨는 법원에서 의사자로 인정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정부는 이처럼 어렵게 내려지는 판결에도 승복하지 않는다. 의사자 인정 요청은 정부에 의해 거부당하기 일쑤다. 법원에 소송을 내도 인정 판결을 받기가 쉽지 않다. 승소 판결을 받아도 정부가 항소하는 바람에 이에 대응하느라 진이 빠진다.

우리 사회 ‘이름 없는 희생’의 현주소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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