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을 더 지치게 하는 盧대통령의 말

  • 입력 2005년 7월 1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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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13일 해외한인회장단 초청간담회에서 “나는 대통령 시작부터 레임덕(권력누수 상태)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 때문에 국정(國政)이 제대로 안 된다’고 했던 것의 연장선에 있는 발언이다. 그랬던 노 대통령이 14일에는 대학교육협의회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어느 분야를 봐도 취임 전보다 악화된 곳은 없다”고 말했다. 금융시스템, 신용불량자, 북한 핵, 한미동맹 등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면서 “앞으로 5년, 10년간 문제없이 간다고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을 바꾸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정상황에 대한 인식의 표명이 어떻게 하루 만에 이처럼 달라질 수 있을까. 경제의 성장동력(成長動力)이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잇따르고, 서민들과 적지 않은 중산층까지 갈수록 심해지는 생활고(苦)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대선 때 노 후보 지지유세를 했던 부산의 ‘자갈치 아줌마’조차 “30년 동안 장사했지만 이렇게 힘든 것은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런 마당에 노 대통령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빠진 것은 없다, 다 잘될 것이다’는 식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는 거친 반응이 국민 사이에서 쏟아지고 있음을 노 대통령과 측근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노 대통령이 상황 돌파 카드로 던진 ‘연정론(聯政論)’과 ‘개헌론’은 많은 국민의 ‘냉담과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내에서는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내각책임제 개헌 움직임이 본격화되면 한나라당에서도 상당수의 동조자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돈다. 이처럼 정치게임에서 주도권을 잡았다는 판단이 혹시라도 노 대통령의 자신감에 깔려 있다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노 대통령과 정치권이 정치게임에 몰두하면 할수록 총체적 국가역량은 경제를 살리고 민생고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모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가 국력 소모의 주범이 될 우려가 크다.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노 대통령의 ‘말’을 따라가기에 많은 국민은 벌써 지친 모습이다. 옳건 그르건, 말의 일관성이나마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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