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이신바예바 飛上은‘육상의 오페라’

  • 입력 2005년 7월 15일 0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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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왜 나는가. 날갯짓은 ‘고통의 축제’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신바예바. 동아일보 자료 사진
새는 왜 나는가. 날갯짓은 ‘고통의 축제’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신바예바. 동아일보 자료 사진
러시아의 ‘미녀 새’ 이신바예바(22·174cm 65kg)가 또 날았다. 그는 6일 장대높이뛰기에서 4m93을 넘어 생애 14번째로 세계 신기록을 바꿨다. 그리스 여신상같이 또렷한 얼굴선, 가을 햇살처럼 눈부신 함박웃음. 마치 한 마리 도요새 같다.

이신바예바는 볼가강 하류의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 출신이다. 그는 15세까지 기계체조 선수로 활약했다. 그 덕분에 복부에 임금 왕(王)자가 뚜렷할 정도로 상체 근육이 발달했다.

한국기록은 최윤희(19·공주대)의 4m. 무려 1m 가까이 차이가 난다. 남자는 ‘인간 새’ 세르게이 붑카(41·우크라이나)가 세운 6m14. 그는 현역시절 무려 35번이나 세계 기록을 갈아 치웠다.

고대 켈트족은 막대를 짚고 개울을 뛰어넘었다. 러시아 농민들은 쇠스랑을 딛고 건초더미를 뛰어오르는 놀이를 즐겼다. 영국인과 아일랜드인들도 나무막대기를 짚고 돌담을 뛰어넘었다.

장대높이뛰기는 불온하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다. 수평 운동에너지가 한순간에 수직에너지로 바뀐다. 단박에, 그것도 거의 직각으로 수평에너지를 수직에너지로 바꾸는 생물은 지구상에 오직 인간뿐이다. 어느 날 “아항, 그렇구나”라며 홀연히 깨달음(頓悟)을 얻는 선승과 닮은꼴이다. 강을 다 건너면 이젠 배를 버려야 한다. 장대에 집착하면 장대에 찔린다.

장대는 하늘로 가는 ‘화두’다. 두둥실 허공에 떠오르려면 장대에 매달려야 한다. 하지만 허공의 정점에 이르는 순간 과감하게 장대를 내던져야 한다. 깨달음을 얻는 순간 그 화두조차 털어내야 하는 것과 같다.

2000년 일본선수권대회 장대높이뛰기 남자경기에서 야쓰다 다토루는 장대에 ‘똥침’을 맞았다. 5m40 3번째 도전에서 무사히 바를 넘었지만 떨어지다가 장대에 항문과 직장이 찔린 것. 야쓰다는 수술을 받고 한 달이 넘게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래도 야쓰다는 다행이다. 장대에 가슴을 찔려 불구가 된 선수들도 많다.

장대높이뛰기는 ‘육상 경기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선수들은 단거리, 체조, 철봉, 평행봉, 트렘블린, 로프 타기 등 온갖 연습을 다해야 한다. 팔다리가 긴 사람이 절대 유리하다. 올림픽 출전 남자 선수의 평균 체격은 182cm 79.8kg(여자 169cm 59.8kg)에 이른다.

우선 단거리선수의 폭발적인 스피드(도움닫기)가 가장 중요하다. 더 빨리 달릴수록 더 높이 뛰어 오를 수 있다. 스피드가 빠를수록 장대를 더 높은 데서 잡을 수 있고, 장대를 높이 잡을수록 보다 큰 상승에너지를 탈 수 있다. 돌고래 같은 도약력(구르기)은 말할 것도 없고 일단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뒤엔 체조선수의 우아한 균형감(공중자세)이 필요하다.

장대높이뛰기에는 에너지보존법칙이 적용된다. 수평 운동에너지가 장대에 고스란히 옮아갔다가 다시 도약에너지로 바뀐다. 하지만 에너지를 이동시키는 것은 힘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꿈이다. 꿈이 인간을 허공으로 쏘아 올린다. 꿈을 잃은 새는 날개가 사라진다. 키위새는 이제 거의 날개가 없다. 펭귄의 날개는 지느러미로 변했다. 타조의 날개도 무늬만 남았다.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공중에 두둥실 몸을 떠올린 뒤 다시 지상에 떨어졌을 때 그는 이미 뛰어오르기 전의 그가 아니다. 그는 새로 태어난 자이다. ‘거듭난 자’ 이다. 설령 그가 실패했을지라도 그는 날갯짓의 그 숨 막히는 떨림을 맛본 자이다. 그래서 그는 고독하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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