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프랑스 남부의 시인집단인 ‘트루바두르’가 사랑의 시를 애송했던 것은 무척 예외적인 일이었다. 이들은 궁정의 화려한 파티에서 만난 남녀가 눈길을 마주치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결혼으로 맺어지는 것을 찬양했다. 이른바 ‘궁정 사랑’은 먼 훗날 확산된 ‘낭만적 사랑’의 기원이다. 물론 당시에도 연애는 존재했다. 하지만 결혼 밖에서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18, 19세기에 진행된 ‘사랑의 혁명’은 사랑과 결혼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일이었다. 남녀가 배우자를 직접 선택하는 사례가 늘면서 불륜에 갇혀 있던 사랑이 서서히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개인의 자유’가 확대된 데 따른 소득이다. 우리나라에도 자유연애와 결혼을 이상적인 것으로 보는 ‘이데올로기’가 뿌리내려 있지만 결혼의 속성상 신분과 계층, 종교, 교육수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 현실의 모습이다.
▷한국 사회의 결혼관이 보수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엇비슷한 조건의 남녀를 연결해 주는 결혼정보업체에서 표본을 구한 것이라 제한적이긴 하지만, 남녀가 결혼에 이르려면 경제 문화적 여건이 비슷해야 한다는 게 결론이다. 서울 강남 8학군 출신이 같은 지역 내에서 배우자를 찾는 식이다. 결혼의 추세는 어차피 사회상의 반영이다. ‘끼리끼리 결혼’도 심리적 여유를 상실하고 모험을 회피하려는 요즘 세태를 보여 주는 게 아닐까.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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