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결혼 상대

  • 입력 2005년 7월 13일 03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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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해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는 세상이다.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정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세기를 기준으로 그 이전까지는 결혼이 사랑과 무관하게 이뤄졌다고 보면 된다. 왕실의 결혼은 철저한 손익 계산에 따른 정략결혼이었다. 국가 간 동맹을 위한 ‘외교적 거래’로 결혼이 성사되는 일이 흔했다. 귀족들은 혼인을 통해 세력을 키우고 재산을 늘렸다. 농민들은 최대한 많은 토지를 갖고 있어야 먹고살 수 있었기에 결혼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경제적 조건이었다.

▷12세기 프랑스 남부의 시인집단인 ‘트루바두르’가 사랑의 시를 애송했던 것은 무척 예외적인 일이었다. 이들은 궁정의 화려한 파티에서 만난 남녀가 눈길을 마주치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결혼으로 맺어지는 것을 찬양했다. 이른바 ‘궁정 사랑’은 먼 훗날 확산된 ‘낭만적 사랑’의 기원이다. 물론 당시에도 연애는 존재했다. 하지만 결혼 밖에서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18, 19세기에 진행된 ‘사랑의 혁명’은 사랑과 결혼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일이었다. 남녀가 배우자를 직접 선택하는 사례가 늘면서 불륜에 갇혀 있던 사랑이 서서히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개인의 자유’가 확대된 데 따른 소득이다. 우리나라에도 자유연애와 결혼을 이상적인 것으로 보는 ‘이데올로기’가 뿌리내려 있지만 결혼의 속성상 신분과 계층, 종교, 교육수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 현실의 모습이다.

▷한국 사회의 결혼관이 보수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엇비슷한 조건의 남녀를 연결해 주는 결혼정보업체에서 표본을 구한 것이라 제한적이긴 하지만, 남녀가 결혼에 이르려면 경제 문화적 여건이 비슷해야 한다는 게 결론이다. 서울 강남 8학군 출신이 같은 지역 내에서 배우자를 찾는 식이다. 결혼의 추세는 어차피 사회상의 반영이다. ‘끼리끼리 결혼’도 심리적 여유를 상실하고 모험을 회피하려는 요즘 세태를 보여 주는 게 아닐까.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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