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123억기부 유언, 날인없어 무효”

  • 입력 2005년 7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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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업가가 123억 원에 이르는 예금을 연세대에 기부하겠다는 유언을 남겼으나 유언장에 도장이 찍히지 않아 법정다툼을 벌여 왔던 사건과 관련해 유언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연세대는 이 예금을 기부받지 못하며 대신 유족이 차지하게 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병철·崔炳哲)는 5일 사회사업가였던 고 김운초 씨의 동생 가족이 “고인이 연세대에 예금 123억 원을 기부한다고 쓴 유언장은 날인이 없어 무효”라며 연세대와 유산을 관리하고 있는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언은 무효이며 유산 123억 원에 대한 권리는 유족 측에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직접 쓴 유언장은 위조와 변조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고인이 유언장에 직접 날인하지 않으면 유언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고인은 생전에 은행 직원으로부터 유언은 날인을 해야 효력이 있다는 말을 듣고도 날인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둔 것을 보면 고인이 연세대에 문제의 예금을 기부한다는 의사를 굳혔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유족 측이 2003년 11월 고인의 거래은행 대여금고에서 ‘예금 123억 원을 연세대에 기부한다’는 유언장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고인이 작성한 것이지만 고인의 날인은 없었다.

유족들은 “날인이 없는 유언장은 무효”라며 은행 측에 유산을 돌려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세대는 “날인이 없다고 ‘사회 환원’에 대한 고인의 뜻을 어기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행동”이라며 유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지난해 12월과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연세대가 고인의 유산 가운데 공시지가 15억∼20억 원에 이르는 부동산과 유언장에 언급했던 예금 123억 원 가운데 7억 원을 갖고 나머지 116억 원의 예금은 유족들이 갖는다’는 내용의 조정안을 제시했으나 양측이 모두 거부해 조정이 성립되지 않았다.

:자필 유언의 효력:

고인이 생전에 직접 쓴 유언(자필증서)은 고인의 날인뿐 아니라 날짜나 주소가 빠져 있어도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전체 문장과 유언을 한 연월일, 주소, 성명을 스스로 쓰고 날인까지 해야 효력을 얻게 돼 있다. 녹음에 의한 유언도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와 자신의 이름, 유언을 한 연월일을 말해야 한다. 증인의 확인도 필요하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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