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金병준의 ‘풍선껌’

  • 입력 2005년 7월 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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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다.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12월 7일은 역사상 가장 파렴치한 날”이라며 “진주만을 기억하자”고 호소했다. 이 한마디가 미 국민을 하나로 묶었고 전 세계 자유 진영의 결속으로 이어졌다. 신뢰가 받쳐준다면, 지도자의 말은 어떤 무기보다도 강한 힘을 갖는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말을 조심하고 가려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장관급 청와대 참모인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이 엊그제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의 유전개발 의혹과 한국도로공사의 행담도 개발 의혹은 ‘풍선껌 같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두 사건의 청와대 연루 의혹을 부인하면서 “마치 청와대가 뒤에 있는 것처럼, 풍선껌처럼 부풀리고, 거품을 넣는데 국가 발전에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고 언론을 겨냥한 것이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두 사건으로) 치명타를 입었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참모의 변명으로 들린다.

▷유전개발 의혹은 검찰의 미진한 수사를 문제 삼아 여야가 특별검사 도입에 합의한 사건이다. 행담도 의혹에 대해서는 감사원도 문정인 전 동북아시대위원장, 정찬용 전 인사수석비서관,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 등 청와대 사람들의 ‘부적절한 개입’을 인정했다. 검찰은 정태인 전 비서관 등 25명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취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풍선껌 사건’이라니, 특검과 검찰은 ‘풍선껌’의 바람이나 빼라는 말인가.

▷김 실장은 지난해 행정수도 문제로 나라가 들끓을 때도 “(이전) 반대에는 탄핵을 주도하거나 찬성한 분들이 연계돼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이전 반대세력을 공격했다. 노 대통령이 “수도 이전 반대운동은 대통령 퇴진운동”이라고 말한 직후였다. 학자 출신의 대통령정책실장이 정책으로 말하지 않고 공격과 변명을 일삼으면 정부의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난히 말로써 말이 많은 대통령과 참모들이다.

송 대 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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