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명]‘얌체 출제’ 심각성 모르는 학술진흥재단

  • 입력 2005년 5월 26일 0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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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1월 연구관리직을 채용하면서 출제한 논술시험 문제 중 하나다.

‘한국사회에서 학술 진흥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로부터 연구계획서 심사의 공정성을 놓고 비난을 받고 있다.

국회나 교육인적자원부 등 정부기관으로부터는 투입되는 예산에 비해 가시적 연구 성과가 부진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언론으로부터 문제가 생기면 연구비가 새어나간다는 비판과 함께 감독소홀을 질타 받고 있다.

이 같은 갈등적 상황에서 재단이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우호적,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를 출제한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재단이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외부기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단이 올해 두 차례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시중에서 판매되는 수험서의 문제를 그대로 베껴 출제했다는 사실(본보 25일자 A10면 보도)을 확인하려 했을 때 기자는 재단 관계자들이 보인 반응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기시험 문제를 낸 재단의 박모 총무과장은 “유명 문제집에서 출제한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모든 응시생이 문제집을 봤을 테니 공평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그렇게 쓸 기사가 없느냐”고 핀잔까지 줬다.

기자는 재단의 최고책임자인 주자문(朱子文) 이사장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비서진은 연결해 주지 않았다.

23일부터 이틀간 이사장과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뒤늦게 전화를 걸어온 언론홍보 담당자는 “어떤 문제를 내느냐는 것은 기관의 고유 권한 아니냐” “외부 출제진도 시중 문제집을 참고하는 것으로 안다”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위에서 언급한 논술시험의 답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외부기관과 우호적, 협력적 네트워크를 만들려면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자세도 그런 답의 하나일 것이다.

이재명 사회부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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