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운동 25주년]분노와 절망의 횃불, 인권과 민주의 촛불로

  • 입력 2005년 5월 17일 18시 33분


코멘트
5·18 민주화운동 제25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10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묘지에서 열린다. 17일 국립 5·18묘지를 찾은 김유엽 할머니가 당시 희생된 아들의 묘비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광주=변영욱  기자
5·18 민주화운동 제25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10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묘지에서 열린다. 17일 국립 5·18묘지를 찾은 김유엽 할머니가 당시 희생된 아들의 묘비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광주=변영욱 기자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5·18민주화운동(1980)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남겼다. 지난 25년간 지식인들은 그 정신적 상흔을 치유하기 위한 수많은 담론을 생산해 왔다.

▽강요된 침묵=5·18이 낳은 첫 담론은 침묵이었다. 5·18담론을 집대성한 ‘오월의 사회과학’의 저자 최정운(崔丁云)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의 지적처럼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압도적 폭력에 직면했을 때 말문이 막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실어증이 군사정부의 철저한 보도통제, 그리고 한국 주류사회의 의식적 외면과 결부되면서 ‘광주’ 또는 ‘광주학살’은 우리 사회에서 금기의 용어가 됐다.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의 재등장=그 후 5·18담론은 한동안 학생운동권에 의해 독점됐다. 학생운동세력은 5·18의 참담한 기억을 분노의 에너지로 삼아 6·25전쟁 이후 지식인 사회에서 자취를 감췄던 마르크스주의이론을 ‘변혁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부활시켰다. 그러나 상처가 깊은 만큼 그 담론의 분출도 과격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민주’를 외치던 학생들의 입에서 1980년대 이후 ‘혁명’과 ‘반제’라는 구호가 거침없이 쏟아졌다. 혁명이 겨냥한 것이 군부독재정권이었다면 반제가 겨냥한 것은 미국이었다.

▽반미주의의 노골화=한국 민주화의 우군으로 간주됐던 미국은 5·18을 막기 위해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단의 원흉’이자 ‘제국주의 침탈의 주역’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9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그런 반미 분출의 충격적 신호탄이었다.

이런 비판의식은 냉전의 책임을 소련보다 미국에 두는 ‘수정주의 사관’과 개발도상국의 저개발을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구조적 착취로 설명하는 ‘종속이론’의 유행을 낳았고 2002년 ‘촛불시위’로까지 이어졌다.

▽소수 비밀집회에서 대중 공개운동으로=5·18은 일부 학생과 지식인들에게 한정됐던 민주화운동을 대중화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유신시대 민주화운동세력은 소수의 주도 하에 비밀리에 집회를 기획했고, 일체의 발언기록을 남기지 않을 만큼 보안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5·18 이후 민주화운동은 ‘대자보 운동’이라고 할 만큼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양상을 띠었다. 군부 정권에 대한 분노와 비판의식이 사회 저변에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1987년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한국 현실 진단 논쟁=5·18은 서구이론의 소화에 급급하던 국내 학계에 한국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의 모색을 촉진시켰다.

한국의 해방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반영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각광받고, 1985년 계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전개된 경제학자 박현채(朴玄埰) 씨와 이대근(李大根)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의 논쟁을 계기로 ‘사회구성체 논쟁’이 뜨겁게 전개됐다. 이 논쟁의 쟁점은 당시 한국사회를 반(半)봉건 국가로 보는가,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로 보는가에 있었다. ▽활발해진 통일 논의=군사정권의 반공정책에 대한 도전은 ‘북한 바로 알기 운동’과 통일운동의 형태로 이어졌다. 이는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분단 상황을 우선 극복해야 한다는 ‘분단체제론’을 낳았다. 또 5·18민주화운동 주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사회변혁의 주체로서 ‘민중’이라는 집단개념이 재발견되고 이와 관련한 무수한 논쟁이 이어졌다.

1980년대 중반 급진적 방향으로 치닫던 5·18담론은 1987년 민주화 및 1990년대 공산권 붕괴를 계기로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다 보편적 성격으로 발전하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