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국내 정치문제는 총리에게=대통령 직무에 복귀한 이후 1년 동안 노 대통령은 취임 초기 1년과는 다른 국정운영의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해 8월부터 ‘책임장관제’를 골간으로 한 분권형 국정운영 실험에 나섰고,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에게 힘을 실어 주면서 국내 정치현안에 직접 나서는 일은 피하고 있다.
일부 언론과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직설적인 언사도 줄어들었다. 취임 초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강조했던 노 대통령은 지난해 말 ‘건강한 협력관계’를 언급했고, 지난달 25일 국정홍보처 업무보고에서는 언론과 권력의 관계를 ‘건설적인 경쟁관계’로 새롭게 규정했다.
그러나 외교 분야에서는 ‘얼굴을 붉히더라도 할 말을 하겠다’는 이른바 자주외교 노선을 더욱 강화하면서 한미동맹이 균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또한 올해 제기한 ‘동북아 균형자론’이 비판을 받자 지난달 16일 터키 동포간담회에서 “유식한 한국 국민 중에 미국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며 특유의 공격적 언사를 재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과거청산형에서 미래지향형으로=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달라졌다.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던 2003년 후반기에는 ‘구시대의 막차’론을 펴면서 과거의 정치양태를 청산하는 역할에 집착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는 선진 한국을 구호로 내걸면서 ‘톨게이트’론을 폈다. 올해 1월 5일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노 대통령은 “다음 정권 첫해(2008년)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깃발을 달고 선진국 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도록 선진국과 중진국의 톨게이트에서 한국호 자동차 키를 넘겨주겠다”고 말했다.
양극화 현상의 극복을 강조하기 위해 군대의 행군 때 뒤에 처진 병사를 독려하는 역할에 빗댄 ‘인사계 대통령’, 정부 혁신을 위해 조그만 시스템 개혁에도 직접 나서겠다는 ‘과장급 대통령’이란 말도 만들어냈다.
▽노 대통령 변화의 촉발제는=무엇보다 지난해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승리를 거둔 데 따른 정치 환경의 변화가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과반의석의 확보로 국정의 주도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에 못지않게 지난해 하반기 39일간에 걸친 해외순방도 노 대통령의 인식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많다. 노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에 “기업이 바로 나라다”, “기업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라며 기업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재계는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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