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이은 핵능력 과시]對美 협상용 엄포만은 아닌듯

  • 입력 2005년 5월 13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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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의 보유를 시인한 이후 핵문제와 관련해 ‘자백하기’ 전략을 사용해 왔다. 1994년 1차 북한 핵 위기 때 미국이 제기한 핵개발 의혹을 부인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게임의 법칙’을 추구해 온 것.

11일 북한 외무성의 ‘폐연료봉 8000개 인출 완료’라는 북한의 자백에 미국은 “많이 들어본 소리”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 씨는 저서 ‘벼랑 끝 협상(Negotiating on the Edge)’에서 “협상 당사자는 반복적으로 구사하는 벼랑 끝 전술에 익숙해지고, 종국에는 무시하게 된다”며 “벼랑 끝 전술은 한번 효용이 떨어지면 종종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핵 게임’과 체제단속을 모두 노린 카드=북한이 핵 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0년이 넘도록 미국과 벌이고 있는 핵 게임 본래의 의미와 함께 북한체제 내부단속을 위한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이봉조(李鳳朝) 통일부 차관은 핵 게임의 관점에서 “북한이 향후 재처리까지 수순을 밟아갈 것”이라며 “압박수위를 높여 가는 동시에 협상력을 강화해 나가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정부 고위당국자는 “협상용일 수도 있지만 이미 추출한 플루토늄이 있는데도 또다시 재처리 과정에 들어간 것은 핵무기고(庫)를 늘리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사회통제 강화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중앙정부의 배급체제가 사실상 무너지면서 지방에 대한 통제가 극도로 이완되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라며 “후계구도 가시화 등 불안요소가 상존해 있는 상태에서 북한 지도부는 핵카드를 체제결속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핵의 본질은?=최근 일련의 태도로 볼 때 북한은 미국이 제공하겠다는 경수로와 중유를 포기하는 대신 핵무기 보유를 통한 안보와 체제유지 강화를 택한 것 같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이 협상카드로서의 핵보다는 핵보유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북한은 2002년 12월 핵동결 해제조치를 단행해 폐연료봉 8000개의 재처리를 이미 완료했다고 주장했다. 그 후 원자로에 새로 넣은 연료봉 8000개를 이번에 꺼낸 만큼 핵무기고를 늘리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는 것.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김근식(金根植) 교수는 “최초에 북한이 어떤 의도로 핵을 추구했는가와는 상관없이 현재 북핵은 미국과의 협상카드인 동시에 북한체제의 생존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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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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