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문화코드가 욕?

  • 입력 2005년 5월 8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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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정모(43·서울 강동구 성내동) 씨는 얼마 전 버스를 탔다가 민망한 광경을 보았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넷이서 떠드는 소리가 한가한 오후 시간의 버스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데 대화 내용이 ‘말 반 욕 반’이었다. 서로 부르는 호칭은 “야 이 X아”가 기본이었고, 학교 얘기도 “울 담탱이 재수 존나 없잖아” “아주 X랄이야…”식이다. 주변에 엄마뻘인 아줌마들이 있는데도 “요새 아줌마들 짱나. 지들이 처녀야? 웬 쌩머리니? 재수 없게…”하는 얘기를 마구 내뱉는 것이었다.》

●10대의 욕! 욕! 욕!

정 씨는 “그 아이들 앞 쪽에 앉은 나의 머리가 파마머리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며 “내게도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이 있지만 요즘 욕설이 여학생들까지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정 씨뿐 아니다. 많은 주부들은 하굣길 버스 안이나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지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아이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엄마 입장에서 야단을 쳐야 하나 갈등도 되면서 ‘내 아이도 저러고 있을까’ 싶어 우려스럽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은 집안에서 엄마와 충돌할 때에도 뜻하지 않은 욕설로 엄마를 놀라게 만든다.

주부 이모(42·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씨의 하소연.

“매일 컴퓨터 게임 때문에 중학교 2학년인 아들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야단을 좀 심하게 친 뒤 인터넷통신선을 끊어버리겠다고 했지요. 아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에이 씨×’하고 욕을 하면서 주먹으로 벽을 쾅쾅 치더군요.”

이 씨는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황스럽고 막막했다는 것이다.

말을 안들을 때 ‘사랑의 매’라도 들 수 있었던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중학생만 되어도 힘에 부친다. 매라도 들라고 했을 때 “어머니, 왜 이러세요!”라면서 손목을 확 붙들면 ‘게임 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부모가 먼저 자기점검을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인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10대 아이들이 욕을 하는 원인은 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혹은 재미있어서 하는 어린 시절과는 다르다”며 “나도 이제 어른이 됐다, 대단한 존재가 됐다는 우월감의 표현”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집단으로 모인 가운데 욕설을 할 경우 어른들이 직접적으로 “하지 마라”고 비난할 경우 자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훈계를 할 때는 어른들끼리의 얘기인 것처럼 하거나 넌지시 얘기를 해 아이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것.

손 원장은 또 “또래끼리 욕을 하더라도 집이나 다른 장소에서 그러지 않는다면 행동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니까 크게 적정할 것은 없다”면서도 “부모와 언쟁을 하다 욕을 하는 경우는 감정이 가라앉은 다음 반드시 잘못된 행동임을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10대 아이들 사이에 욕이 일종의 ‘또래코드’가 된 것은 욕설이 난무하는 인터넷과 욕이 새로운 문화코드로 인식되다시피 하는 대중문화에도 원인이 있지만 부모 책임도 적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시청소년상담실의 윤재호 상담원은 “화나 스트레스를 자식에게 욕설로 풀어내는 부모 때문에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며 “청소년은 객관화 능력이 부족해 부모로부터 욕을 들으면 부모가 욕을 한 이유는 생각지 않고 욕만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청소년은 자기비하, 자신감 결여 등의 부작용을 겪게 되고 약한 친구에게 부모한테서 배운 욕을 사용해 화를 풀기도 한다.

윤 상담원은 “평소 욕을 잘 안하는 부모들도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화를 낼 때 욕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였는지 점검을 해봐야 한다”며 “이 같은 모습은 아이들에게 깊이 각인되므로 부모 자신부터 바른 언어를 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경아 사외기자·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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