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金부총리는 ‘내신의 亂’ 본질 알고 있나

  • 입력 2005년 5월 6일 21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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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입시에 반대하는 고교 1학년생들의 ‘촛불시위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대(對)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김 부총리는 입시에서 내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학생들의 생각만큼 크지 않은데도 잘못 인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대입제도에 반기(反旗)를 들고 나선 사상 초유의 사태를 ‘오해 탓’으로 돌린 셈이다. 그러면서 그는 2008학년도 입시의 기본 틀을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가 ‘내신 대란(大亂)’의 본질을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혼란은 정부가 ‘내신을 많이 반영하고, 수능시험 성적은 일부만 반영하며, 대학별 본고사는 절대 치르지 말라’는 구체적인 지침을 정해 대학들에 사실상 강요한 데서 비롯됐다. ‘내신 위주로 가라’는 강력한 개입이 없었다면 ‘고1의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들은 각자 유리한 방식으로 입시에 대비하면 되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세계적 교육 자율화에 역행하는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입시통제에 있다. 김 부총리의 호소문에는 이런 본질적인 잘못에 대한 자성(自省)이 빠져 있다. 정부가 문제의 핵심은 내버려둔 채 일선 학교에 촛불시위 참여를 막으라거나, 시위학생을 징계하겠다고 경고하는 것은 경직된 관료주의 체질을 여실히 드러내는 미봉책일 뿐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보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당초 발표한 입시의 틀만 고집한다면 문제는 계속 커질 우려가 높다. 일단 대학에 입시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원칙을 내놓아야 한다. 대학들은 살벌한 구조조정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시대 흐름에 맞는 다양한 신입생 선발방식을 원하고 있다. 대학에 자율적인 선발권한을 준다면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부가 입시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입시 개입이 정당성을 지니던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 준다. 정부의 입시업무는 입학부정과 같은 비리 감시에 그쳐야 한다. 교육당국이 집중해야 할 역할은 대학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원이다. 대학의 ‘앞문’이 아닌 ‘뒷문’을 지키는 일이라 하겠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교훈을 바로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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