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검사들 "절차 결함" 사실상 항명

  • 입력 2005년 5월 5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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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과정 녹음·녹화물의 증거능력 인정 문제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김승규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법무부 간부들이 4일 녹음·녹화제를 시범 실시하고 있는 서울남부지검 조사실을 방문해 시연회를 보고 있다. 전영한 기자
조사 과정 녹음·녹화물의 증거능력 인정 문제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김승규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법무부 간부들이 4일 녹음·녹화제를 시범 실시하고 있는 서울남부지검 조사실을 방문해 시연회를 보고 있다. 전영한 기자
서울중앙지검 평검사들은 한승헌(韓勝憲)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과 김승규(金昇圭) 법무부 장관의 만남에 대해 “타협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평검사들은 나중에 “항명(抗命)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이 대목을 취소했지만 사실상 항명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 많다.

▽격앙된 표현=발표문 중 평검사회가 4일 오후 10시경 공식 철회한 문구는 ‘어제 사개추위 위원장과 법무부 장관과의 합의도 국민의 참여가 배제된 일종의 타협에 불과하므로 그 절차에 있어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고 평검사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 곤란함’이라는 구절이다.

평검사회는 “그러나 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안 마련 과정이 국민을 배제한 가운데 밀실에서 이뤄져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절차에 따라 제대로 된 형사사법개혁이 이뤄지도록 전국 평검사회의 개최 등 여러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항명이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사실상 항명에 버금가는 표현인 셈.

‘반발’ 시점도 빨랐다. 사개추위와 법무부의 합의 방침이 정해진 뒤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모여 합의를 거부하는 발표문을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검사들의 불만이 합의 내용에 대한 부분적인 불만이 아니라 전면적이라는 점이다. 평검사들은 ‘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안 조문 몇 개의 변화’가 아니라 ‘국민의 사법참여’ 재판제도의 도입에 필수적인 배심 제도, 양형기준법 제정문제, 플리바게닝(유죄협상), 참고인 구인제도, 사법방해죄, 허위진술죄 등을 포함한 사법개혁 전반에 대해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사실상 형소법 개정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전망=서울중앙지검 검사는 검찰 전체에서 특별한 의미와 비중을 차지한다. 전국 최대 규모인 데다 각 지검과 지청에서 검증된 엘리트 검사들이 선발돼 모이는 곳이다. 일선 검사들의 대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서울중앙지검의 평검사들이 검찰 지휘권을 가진 법무부 장관의 노력을 전면 부정한 셈이다. 또 대통령 산하기관인 사개추위의 활동 자체도 부정했다. 이에 따라 검찰과 사개추위, 검찰 내부의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의 조직 장악력에 대한 상처는 회복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김 장관은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집단 반발로 비치는 것은 좋지 않다”며 평검사들의 반발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전국 평검사 회의 역시 열릴 가능성이 높다. 서울중앙지검 평검사 회의 대표인 김현채(金眩采·사법시험 33회) 검사는 “전국 평검사 회의 개최를 위한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평검사들의 이 같은 행동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사개추위가 전날 합의한 내용을 전제로 검찰과 다른 안건을 협의하고 있는 와중에 집단행동이 빚어졌다는 점이다. “판 자체를 깨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떨치기 어렵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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