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스틸 당진공장…‘희망의 쇳물’ 악몽의 세월 녹인다

  • 입력 2005년 5월 3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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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힘찬 구호 소리와 함께 폭죽이 울렸다. 동시에 출하장에서 24t 트럭 한 대가 미끄러지듯 서서히 빠져나왔다. 트럭에 실린 것은 둘둘 말린 20t 무게의 열연 강판 1롤뿐. 하지만 이 강판에는 ‘단순한 쇳덩어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근로자 890여 명의 땀과 그들이 기다려온 7년의 세월이 이 강판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열연 강판, ‘투톱’ 체제로=2일 오전 충남 당진군 송악면 INI스틸 당진공장 A 지구. 이날 INI스틸은 이 공장에서 열연 강판의 ‘상업 생산’을 시작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INI스틸 당진공장은 옛 한보철강이 1998년 6월 30일 마지막 열연 강판 생산을 끝으로 문을 닫았던 곳이다.

INI스틸은 현대하이스코와 컨소시엄을 이뤄 지난해 10월 이 공장을 인수했다. 총인수대금은 8598억 원으로 이 가운데 INI스틸이 6789억 원을 냈다. INI스틸은 이 외에도 A, B 두 공장의 전기로 수리와 배선 교체 등에 550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열기로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한때 싸늘하게 식은 채 녹물을 줄줄 흘리던 ‘애물단지’ 전기로는 7년 만에 말끔히 단장된 채 섭씨 1100도의 시뻘건 쇳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국내 열연 강판 시장이 ‘양사(兩社) 체제’로 바뀌는 현장이었다. 국내 열연 강판 시장은 현재 연간 2300만 t 정도를 생산하는 포스코가 독점하고 있다.

INI스틸은 내년까지 이곳에서 180만 t의 열연 강판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애물단지’에서 ‘희망’으로=열연 강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 공장의 운명과도 닮았다.

쇳물이 열과 압력을 거쳐 강판의 형태로 만들어질 때의 온도는 900도. 다시 86m 길이의 냉각대 위를 지나며 식히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도 강판의 온도는 600도나 된다. 그래서 기다림이 필요하다. 상온에서 5∼7일을 식혀야 비로소 상품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된다.

한보철강 시절 한때 월 15만 t까지 생산하며 ‘뜨거운 시절’을 보냈던 이 공장도 7년간을 기다린 끝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현재 당진공장 근로자 890명 중 600여 명은 한보철강 출신. 지금까지 오랜 기다림과 불안감을 견뎌낸 이들이다.

이 공장 열연압연부에 근무하는 김영근(金永根·46) 씨도 한보철강 출신. 그는 “지난 몇 개월간 ‘공장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다시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불철주야 뛰었다”고 말했다.

김 씨를 비롯한 근로자들은 내년 10월 B 공장까지 정상 가동되면 잃었던 동료들을 다시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있다. 김무일(金武一) INI스틸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달 29일 “직원을 내년 3000명 수준까지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가 큰 만큼 기대도 크다. INI스틸은 올해 당진공장에서만 1조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당진공장 매출 목표는 2조1000억 원. 2007년까지 세계 15위 철강 업체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다.

김 부회장은 “당진공장의 열연 강판 생산 능력을 확대해 철근과 H형강 위주 생산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종합 철강 업체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진=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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