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 “인권위 권고사항 현실 무시” 반박 잇달아

  • 입력 2005년 4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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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趙永晃)가 최근 사형제 폐지, 비정규직 관련 법안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개선’ 의견을 표명해 해당 정부기관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이들 정부기관은 “인권위가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인권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논란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대환(金大煥) 노동부 장관은 15일 조찬 강연회에서 “전날 인권위의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한 의견 표명은 균형을 잃은 정치적 행위”라며 “국회에서 노사정(勞使政)이 대화하고 있는데 왜 인권위가 월권행위를 했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인권위가 “일반직 공무원의 직급에 따른 정년 차등은 차별행위”라며 중앙인사위원장에게 개선을 권고하자 중앙인사위는 즉시 반박자료를 내고 ‘수용 불가’ 방침을 밝혔다.

또 인권위가 6일 사형제 폐지 의견을 표명하자 김승규(金昇圭) 법무부 장관은 “형벌에는 교화뿐 아니라 응보의 측면도 있다. 생명을 빼앗았으면 생명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 국민 마음속에 있다”고 반론을 폈다.

초등학생 일기장을 강제적으로 검사하고 그 검사 결과로 시상 평가하는 관행은 인권침해라는 인권위의 의견에 대해서도 교육인적자원부는 “일기 쓰기의 교육적 측면을 무시한 판단”이라고 반박했다.

경찰·소방·교정직·소년보호직·철도공안직 공무원 채용 시 신체기준 적용에 대해 인권위가 지적했을 때 경찰청은 “범인 검거 등 경찰 업무의 특성상 신체 조건도 채용 시 고려돼야 하는 주요 요소”라고 반발했다.

인권위는 15일에도 “교도소에 수용된 마약류 사범, 조직폭력 사범 등에 대해 ‘작업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등의 각서를 강요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며 이런 관행을 폐지하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날 또 “일반 선거공보에 비해 많은 분량이 필요한 점자 선거공보에 대해 동일한 규격 제한을 적용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국회의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게 관련 법조항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의 권고나 의견표명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해당 기관이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문서로 사유를 설명해야 한다.

지난 3년간 권고수용률은 지난해 11월 현재 92.2%에 이르는데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교육 등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사안에 대해 권고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공공기관의 폐쇄회로(CC)TV 등 무인단속 장비의 설치·운영에 관한 정책 권고 등은 아직 수용 여부에 대한 회신이 없는 상태다.

인권위법은 권고에 대한 해당 기관의 조치 기간을 명시하지 않고 있어 권고 수용 여부를 무기한 밝히지 않아도 문제 삼을 방법이 없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인권위법에 피진정기관의 조치가 없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권고에 대한 반응기간을 60일로 제한하는 방안 등도 고려하고 있다.

한편 정부 기관들의 반발에 대해 정강자(鄭康子) 인권위 상임위원은 “인권위는 원칙과 방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며 세부 사안은 해당 기관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인권위의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른 인권위 관계자는 “‘국가기관이 모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옳은가’를 따져 볼 만한 때가 됐다고 본다”며 “인권위는 인권의 관점에서 주어진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앙대 황윤원(黃潤元·행정학) 교수는 “일부에서 인권위가 너무 앞서 나갔다고 우려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정도 이상으로 인권을 강조할 경우 다른 정부기관은 일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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