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 산모 잠든 사이에 제대혈 멋대로 팔아 넘긴다

  • 입력 2005년 4월 12일 02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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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산부인과에서 산모의 동의 없이 제대혈을 임의 채취해 판매하거나 연구용으로 제공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 강서구 A산부인과 제대혈 관리노트(왼쪽)와 제대혈이 담긴 비닐팩. 정세진 기자 min4a@donga.com
일부 산부인과에서 산모의 동의 없이 제대혈을 임의 채취해 판매하거나 연구용으로 제공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 강서구 A산부인과 제대혈 관리노트(왼쪽)와 제대혈이 담긴 비닐팩. 정세진 기자 min4a@donga.com
일부 산부인과 개원의들이 산모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분만 과정에서 무단 채취한 제대혈을 특정 제대혈은행에 판매하거나 연구용으로 넘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 취재팀이 서울 강서구 A산부인과가 작성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의 제대혈 관리기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약 180명의 산모에게서 채취한 제대혈을 판매해 수천만 원의 이익을 본 것으로 11일 밝혀졌다.

▽제대혈 유출 실태=A산부인과는 제왕절개를 선택한 산모가 제대혈과 관련해 먼저 의사를 표명하지 않을 경우 마취 상태에서 제대혈을 임의 채취했다. 자연분만 때는 산모가 의식이 있어 임의 채취가 힘들기 때문에 제대혈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물어 그에 따른다.

병원 측은 이렇게 채취한 제대혈을 비닐 팩에 담아 15만 원 내외에 B제대혈은행에 팔았다. 취재팀의 확인 결과 A산부인과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 10일까지 제왕절개를 선택한 177명의 산모로부터 제대혈을 임의 채취했다.

제대혈은행으로 넘겨진 제대혈은 실험용으로 사용되거나 소아암 백혈병 등의 치료에 쓰인다.

이 병원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제대혈 거래를 해 왔다”고 털어놓았으나 병원 측은 “담당자들의 실수로 산모의 동의를 얻지 않은 제대혈이 얼마나 유출됐을지는 모르겠으나 병원이 고의로 이를 판매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서울의 대형 C병원 관계자는 “연구에 필요한 제대혈이 턱없이 부족해 일선 개인병원에서 넘겨받은 제대혈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대혈 업체 관계자는 “넘겨받은 제대혈은 배양 등의 가공을 거쳐 보관한다”며 “환자가 백혈병 등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신체 조직에 맞는 보관 제대혈을 구입하려면 10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만약 산모가 제대혈 보관을 원할 경우엔 자신이 선택한 제대혈은행에 150만 원 내외의 보관료를 내고 맡기면 된다. 15년 이내에서 사용권과 소유권을 인정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윤리적 법적 논란=자신도 모르게 제대혈을 채취당한 사실을 뒤늦게 안 산모들은 대부분 반발했다.

김모(32·여·서울 강서구) 씨는 “병원에 제대혈을 기증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는데 개인의 유전정보가 담긴 제대혈을 병원이 임의로 팔았다는 사실이 황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대혈 임의 채취를 처벌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제대혈 재활용과 관련한 법적 제도적 근거가 없는 상태”라며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제대혈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수의대 강경선(康景宣) 교수는 “불투명한 유통경로를 거친 제대혈이 그대로 치료용으로 사용된다면 에이즈나 간염 등에 감염될 우려가 있고 또 유전적인 질병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제대혈(臍帶血)▽

태반이나 탯줄에 들어 있는 혈액. 제대혈 속에는 피를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풍부하고 연골과 뼈 근육 신경 등을 만드는 줄기세포도 있어 냉동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한 시기에 녹여서 다시 사용한다. 특히 골수를 구할 수 없는 백혈병 환자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으로 제대혈이 사용되고 있으며 자신은 물론 가족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도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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