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임진모]‘가요계 지병’ 또 도졌나

  • 입력 2005년 4월 4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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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를 떠받드는 힘 가운데 하나가 좋은 신곡의 등장이다. 음악가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듬뿍 담겨 있는 새 노래가 떠야 소비자들의 관심이 몰리고 그만큼 음악시장은 활성화된다. 간혹 흘러간 노래가 주목받을 때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 흐름일 뿐이다.

그래서 음악을 좀 한다하는 가수는 이전의 곡을 다시 부르는 것, 이른바 ‘리메이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통례였다. 1990년대 음악계의 기린아 서태지는 지금까지 남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렇게 약간은 기피 대상이었던 리메이크가 지금은 가수들 사이에서 아주 중요한 성공에의 길로 환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이수영을 최고 인기가수로 만들어준 노래는 80년대 이문세의 히트곡이었던 ‘광화문연가’였다. 신곡을 여러 차례 냈어도 반응이 미미했던 여가수 서영은의 경우는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를 리메이크하면서 마침내 무명의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지난해부터 트렌드로 부상한 리메이크는 올해도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리듬앤드블루스(R&B) 부문의 톱 가수 나얼은 박선주의 곡이었던 ‘귀로’를 불러 인기를 얻었고, 그의 앨범은 신년 벽두에 대박을 쳤다. 김범수의 최신 히트곡 ‘메모리’도 실은 조관우가 불렀던 ‘겨울이야기’의 제목을 바꾼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앨범은 수록 곡 전체가 리메이크라는 것도 특징이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댄스그룹 신화도 얼마 전 통째로 리메이크된 앨범을 발표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어느덧 신곡의 시대는 가고 ‘구곡(舊曲)’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지난해 불어 닥친 ‘7080콘서트’ 붐은 그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면서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대중은 새 노래보다 익숙한 노래를 선호한다’는 그럴듯한 속설도 만들어졌다.

이렇듯 리메이크 곡이 시장을 주도하는 현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창작력의 고갈을 반영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기존의 것을 가져다가 쉽게 성공을 맛보려는 안이함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리메이크가 음악적 편차가 큰 신·구세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며 순기능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 다투어 자신의 노래가 리메이크되는 통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을 듣는 이문세도 “공연에 모녀가 와서 함께 광화문연가를 따라 부르면서 교감하는 장면을 보고 리메이크가 가족의 대화 코드임을 실감했다”고 증언한다.

이런 현상이 좋건 싫건,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것은 리메이크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다. 음반시장이 ‘죽은 게 아니라 없는 것’이라는 자조가 들릴 정도로 바닥을 기는 현실에서 그나마 실적을 챙길 수 있는 길이 리메이크라는 점이 시장에서 검증되자 많은 음반 제작자들이 유혹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그 상업적 유행의 밑바탕에는 ‘비록 기성세대에게는 구곡이더라도 신세대에게는 신곡일 수 있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리메이크가 신·구세대 화합의 문화적 신소재라는 점은 허울일 뿐이고 실상은 상업성에 휘둘리는 풍토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하지만 이 같은 몰림 현상은 결국 상업적 잠재력을 소진할 수밖에 없다. 간혹 나와야지 너무 많이 나오면 지겨워지고 종국에는 함몰돼 버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리메이크에도 ‘너도나도 우르르’라는 가요계의 지병이 도지고 있어 안타깝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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