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中國’ 외국투자 골라 받는다

  • 입력 2005년 4월 1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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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하려면 파이넥스 공법을 가져와라.”

중국에 대규모 추가 투자를 계획하던 포스코는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중국 정부가 공장을 더 짓도록 허가해 주는 대가로 최신 파이넥스 공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파이넥스 공법은 기존 고로(高爐) 기술과 달리 생산 공정을 단축해 원가를 절감하고 환경오염 물질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신기술. 포스코가 지난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핵심 기술이 유출될 우려가 있어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지만 엄청난 중국시장을 감안하면 무시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중국이 경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외국인 투자를 선별적으로 받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하면서 국내 기업의 중국 투자 계획이 잇달아 차질을 빚고 있다.

▽저급 기술은 필요 없다=국내 철강업계 2위 INI스틸은 지난해 중국 랴오닝(遼寧) 성에 1400억 원을 들여 압연공장을 지으려다 포기했다. 중국 중앙정부가 “저급 기술은 더 이상 필요 없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

INI스틸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철강 관련 신규 투자는 아예 허가를 내주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국 투자 조건이 까다로워진 것은 철강업뿐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올 2월 외국 기업이 휴대전화 관련 투자를 하려면 연구개발(R&D)센터를 의무적으로 짓도록 하고 자본금도 최소액을 2억 위안(약 260억 원)으로 올렸다. 이에 따라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추지 않으면 중국에 공장을 짓기조차 어렵게 됐다.

이달부터는 자동차 수입 부품에 대한 관세율을 평균 14%에서 30%로 올렸다. 한국에서 부품을 가져다 중국에서 단순 조립 생산을 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중국 왜 달라졌나=1, 2년 전만 해도 각종 세제 혜택을 주면서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에 바빴던 중국이 달라진 표면적인 이유는 경기 과열 우려 때문이다. 2001년 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급증한 외국인 투자 때문에 중복 투자가 이뤄지고 경기가 과열됐다는 것.

하지만 이면에는 외국 자본을 선별 수용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첨단기술 또는 기술이전 효과가 큰 투자만 받아들이는 쪽으로 투자 유치 전략이 고도화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딜레마에 빠진 국내 기업=거대한 중국 내수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 생산기지가 필요한 국내 기업들은 중국의 태도 변화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중국의 요구대로 고급 기술을 내주었다가는 장기적으로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을 위협하는 ‘부메랑’ 효과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중국 진출을 계획 중인 A기업의 한 임원은 “중국 정부가 명시적으로 기술 이전을 요구하지 않고 투자유치 허가라는 우회적 방법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첨단기술 유치에는 더욱 적극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중국경제실 정상은(鄭常恩) 수석연구원은 “중국 최고지도부까지 나서 삼성전자에 반도체 전(前)공정 공장을 지어 달라고 요구해 삼성 측은 기술유출 문제로 난감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전공정은 반도체 설계 및 디자인이 포함된 핵심 기술로 현재 중국에는 단순 조립에 가까운 반도체 후공정 공장들만 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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