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 교육풍토가 기러기 아빠 양산…WP 3개면 보도

  • 입력 2005년 1월 10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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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9일자는 1면 대형 박스와 2개면에 걸친 관련기사로 한국의 ‘기러기 가족’을 소개했다. 제목은 ‘고통스러운 선택(A Wrenching Choice)’. 자료 제공 워싱턴포스트
워싱턴포스트 9일자는 1면 대형 박스와 2개면에 걸친 관련기사로 한국의 ‘기러기 가족’을 소개했다. 제목은 ‘고통스러운 선택(A Wrenching Choice)’. 자료 제공 워싱턴포스트
중산층 젊은 부부가 자녀의 조기유학 때문에 국내외에서 떨어져 사는 ‘기러기 가족’이 한국에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고통스러운 선택’이란 제목으로 한국의 조기유학생 급증 현상을 1면과 14, 15면 등 3개면에 걸쳐 상세히 다루면서 외로운 ‘기러기 아빠’들은 패스트푸드로 인한 비만과 외도 같은 문제를 겪기도 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 “기러기는 한국의 전통 결혼식에서 평생 반려의 상징이며 먼 거리를 여행하며 새끼들의 먹이를 구해온다”면서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부가 헤어져 사는 기러기 가족이란 말의 유래를 설명했다.

이어 2000년 4400여 명이었던 조기유학생이 2002년 1만 명으로 늘어났다는 한국 관리의 말을 인용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은 인터넷과 초대형 상가들이 있는 선진국이지만 사회는 왕조시대 교육체제를 기반으로 움직인다”면서 “직업과 사회적 지위, 심지어 결혼까지 시험성적에 따라 결정돼 창조성이나 진취적 기상이 설 자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조기유학과 기러기 가족 증가의 원인으로는 영어 능력과 국제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에서의 교육을 우대하는 현상을 꼽았다.

또 기러기 가족의 자녀들이 미국 학교에 잘 적응해 학업과 취미활동을 즐기는 경우도 많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인과 세 자녀를 미국에 보내고, 혼자 한국에 살고 있는 강원랜드 김기엽 이사(39) 가족의 사연을 소개했다.

김 이사는 2002년 8월 초등학교 6학년인 큰딸(13)을 미국 메릴랜드 주에 사는 장인 장모에게 보내고 1년 뒤 아내(38)와 아들(11), 둘째 딸(4)까지 보낸 뒤 강원 태백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김 이사는 “퇴근 후나 주말에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다”면서 “10년 뒤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데 솔직히 그때까지 아내와 아이들 없이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아내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선 남자들의 짐이 더 크다”며 “나보다 남편이 더 많이 희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큰딸은 1년 만에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영어교습반(ESL)을 졸업하고 과외활동을 즐기고 있지만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상담원의 말을 인용해 기러기 가족 중에는 아이들이 낙제, 약물복용 등을 경험한 뒤 미국생활을 포기하고 귀국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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