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에 비친 2003년]세상살이 담아낸 '인생극장'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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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본보 사회면의 한 모서리를 장식하는 ‘휴지통’은 우선 ‘재미’를 추구한다. 하지만 그 재미의 이면에 있는 민생(民生)들의 기쁨과 슬픔, 공분, 연민, 엽기 등의 모습도 함께 담겨있다. 참여정부의 출범, 대구지하철 참사, 이라크전쟁, 로또 열풍 등이 지면을 뒤덮었던 2003년 한 해. 300자가 채 안되는 짧은 양이지만 굵직한 사건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묘사해 온 올해 휴지통의 면면을 살펴봤다.》

2003년 새해 첫날의 휴지통은 ‘새해엔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좋은 뉴스만을 전하는 인터넷 사이트 ‘해피인’의 소개로 출발했다.

그러나 올 한 해 휴지통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소식들을 더 많이 전했다.

내기바둑 중 한 수를 물러 주지 않는 상대방을 때려죽인 40대 남자의 얘기가 보도됐고(1월 14일) 폭력을 휘두른 뒤 이를 신고한 동료 노숙자를 “덕분에 감옥 갔다 왔다”며 둔기로 살해한 노숙자 얘기도 있었다.(10월 2일)

2003년 로또의 열풍은 휴지통에도 바람을 몰고 왔다.

64억여원의 로또 1등 당첨권을 잃어버렸는데 다른 사람이 수령해 갔다며 경찰에 신고한 30대 여자의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으며(4월 4, 8일), 여름에는 20억원의 로또 당첨금액 분배를 둘러싸고 동거녀와 주먹다짐을 한 30대 남자의 사연이 휴지통을 채웠다.(8월 22일) 한 로또 당첨자는 돈을 펑펑 쓰다가 대전 현금수송차 도난사건의 용의자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11월 12일)

휴지통에만 2번 등장해 ‘유명인사’가 된 사람도 4명이나 있었다.

면허가 취소되자 조랑말을 타고 ‘음주 승마’를 했던 ‘조랑말 아저씨’는 며칠 뒤 조랑말 사료를 사러 음주운전을 하다 구속됐다.(11월 22, 29일)

성폭행을 하려다 피해자에게 혀를 깨물려 혀가 1.5cm 잘린 한 성폭행범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덜미가 잡혔다.으며(6월 11, 20일)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줄 돈이 없어 게임CD를 훔친 아버지는 이 기사를 보고 돕겠다는 독자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이틀 연속 휴지통에 등장했다.(12월 24, 25일)

불경기 탓인지 경쟁 음식점 주인들간의 분쟁도 자주 올랐다.

인천 강화에서는 라이벌 보신탕집 음식 재료에 몰래 세제를 뿌린 50대 여성이 구속됐으며(3월 7일) 뻥튀기를 팔다가 붕어빵으로 업종을 바꾼 이웃 상인과 주먹다짐을 한 사연도 보도됐다.(12월 19일) 식당 영업권을 양도한 뒤 인근에 비슷한 음식점을 다시 내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도 나왔다.(4월 17일)

공개적으로 선물을 보내는 유행도 휴지통을 채웠다.

대선자금 수사로 인기를 얻은 검찰 수뇌부는 보약과 햅쌀(10월 30일), 도시락(12월 3일)을 팬클럽 회원들에게서 선물받았다. 차시중 논란으로 교장이 자살까지 한 보성초교에 커피자판기를 보내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며(4월 15일) “밥그릇 싸움 그만하라”며 국회의원들에게 밥그릇을 하나씩 보낸 시민단체 얘기도 소개됐다.(6월 26일)

휴지통은 또 어처구니없는 ‘엽기’ 사연들도 담아냈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다 스텝이 꼬이는 바람에 들어올리려던 파트너를 바닥에 떨어뜨려 중상을 입힌 사연(11월 8일), 복통 환자의 뱃속에서 쇠톱과 칫솔 9개가 발견된 얘기(7월 3일), 술에 취해 트럭에 발등이 깔린 줄도 모르고 6시간을 잔 사연(9월 5일) 등은 웃을 수만은 없는 씁쓸함을 전했다.

연예인과 운동선수 등은 올해도 휴지통에 가장 많이 등장했다.

탁재훈 김창완 길용우 서장훈 김재현 추소영 등은 음주운전으로 휴지통을 채웠고 장서희 유민 김성택은 소속사 또는 전속계약 문제로, 이경실과 임창용은 부부문제로 한 자리를 차지했다.

휴지통은 대구지하철 참사로 고아가 된 엄수미양 3남매의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한 한국야쿠르트(3월 1일), 유전자 검색으로 34년 만에 가족과 상봉한 장애인(4월 11일), 동전을 주워 수해성금 7만9000여원을 낸 환경미화원(9월 25일) 등 ‘아름다운’ 사연도 빼놓지 않았다.

본보뿐만 아니라 국내 언론사상 최장수 역사를 갖고 있는 고정란. 1920년 4월10일 본보 창간 열흘째 되던 날 탄생해 83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첫 호는 3·1독립운동의 만세 소리가 채 가시지 않았던 시절, 부임 후 조선말을 공부한다는 총독부 정무총감에게 ‘만세라는 말이 어떤 말인지 특히 궁리하는 게 긴급한 일…’이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휴지통의 형식과 원고량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세상은 참 많이 바뀌고 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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