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오희/문화재 바로잡은 ‘과학의 힘’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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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보는 또 하나의 눈이 있다. 바로 과학의 눈이다. 이 과학의 눈이 최근 57년간 고정돼 있던 유물의 이름을 바꿔 놓았다. 보물 제259호 수종사 부도 내의 유물 중 ‘금동제구층탑’(1942년 최초 지정)이 ‘금제구층탑’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문화재 보존과학계의 조용한 요동이요, 관련 연구자의 보람이자 행복이기도 하다.

▼ ‘금제구층탑’ 57년만에 제 이름 ▼

금동제구층탑이라고 하면 구리 또는 청동(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탑을 만들고 탑 표면에 금박 또는 금분을 입혀 도금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소지금속(바탕이 되는 금속)인 동과 표면의 금을 합성한 단어 ‘금동’이라는 명사를 유물 이름 앞에 붙여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국립박물관 보존과학실에서 조사한 이 문화재의 분석표를 보면 금 83.19%, 은 16.36%, 구리 0.33%다. 요즘 귀금속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금 함유율(캐럿·24K는 99.9% 순금) 단위로 보면 금의 순도는 20K에 해당된다.

문화재에 대한 과학적 조사연구의 역사는 18세기 말 독일 화학자 마르틴 하인리히 클라프로트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대 화폐를 화학적으로 분석한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발굴된 고고유물이나 박물관에 보존돼 있는 유물에 대한 연구에 자연과학적인 방법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어느 국가든지 문화재에는 그 나라의 정체성과 정신이 담겨 있다. 또 문화재의 제작기술을 살펴보면 민족의 성격, 민족의 예술성, 민족의 발전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자국의 문화재 제작기술을 정확히 밝혀 내기 위해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이용한 분석 장치와 기술을 앞세워 연구하고 있다.

문화재의 연구나 보존을 위해 제일 먼저 시행된 것이 유물이 지니고 있는 재질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러나 문화재 분석은 시료를 취하지 않고 문화재의 원형을 그대로 분석해야 한다는 대원칙 때문에 일반 산업분석과 큰 차이가 있다. 또 문화재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것은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된다는 어려움도 있다.

다양한 재질로 제작된 문화재 중에서 명칭 사용에 가장 혼돈을 주는 것이 청동제품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구리와 주석으로 제작된 것은 청동이고, 구리와 아연으로 제작된 것은 황동이다. 각각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청동과 황동은 오랜 세월 구리가 부식되면서 표면에 부식 생성물이 쌓이는데, 그 가운데 녹색의 녹(Malachite)과 청색의 녹(Azurite)의 빛깔을 보고 일반적으로 모두 ‘청동’이라는 명칭을 붙여 왔다.

유럽에서는 정확히 분석되지 않은 문화재는 구리합금(Copper Alloy)이라고 표기하며 과학적 분석으로 밝혀진 문화재에 한해 청동(Bronze) 또는 황동(Brass)의 명칭을 붙여 사용한다. 이러한 명칭도 하나씩 정리해 나가야겠다.

요즘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동식 X선 형광분석장비와 같은 장비들이 도입돼 문화재를 옮기거나 시료를 채취하지 않고도 분석할 수 있는 시대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재 연구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호암미술관 문화재보존연구소가 이러한 분석 장비를 갖추고 문화재 재질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 고대교역관계 밝힐 기반 마련을 ▼

잘못된 명칭을 바로잡는 일은 분석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기관부터 시작하면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할 일이 아니고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연구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문화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일 것이다.

최근에는 국가 동산지정문화재 심의에서도 재질분석조사를 하고 있고 이미 지정된 금속문화재인 국보 45점, 보물 89점에 대해서도 내년부터 재질조사가 실시된다고 한다. 여기서 나아가 앞으로 문화재분석 전문가는 우리나라 문화재의 분석 자료는 물론이고 주변 국가의 자료도 직접 조사해서 고대사회의 교역관계에 대한 자연과학적 자료를 인접학문에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이오희 호암미술관 문화재보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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