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사이트는 유해”…법원 “위헌-위법 소지 있다”

  • 입력 2003년 12월 22일 0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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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인터넷상 동성애 사이트를 청소년 유해물로 규정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이는 동성애자의 성정체성 결정권을 폭넓게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어 앞으로 유사소송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특별6부(이동흡·李東洽 부장판사)는 국내 최초 동성애자 사이트인 ‘엑스존’ 운영자가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결정한 것을 무효로 해달라”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 결정의 근거가 된 동성애 관련 조항인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7조는 위헌 또는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16일 밝혔다.

청소년보호법 10조는 ‘청소년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것’을 유해 매체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시행령 7조는 유해 매체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혼음, 근친상간, 동성애, 가학·피학성 음란증 등 변태성행위, 매춘행위 등 기타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성관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열거하고 있다.

재판부는 “엑스존을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인정할 경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 동성애에 대한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동성애가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7조에 열거된 혼음, 근친상간 등의 변태성행위와 같은 정도로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성관계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동성애와 관련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을 문제삼은 첫 소송이기 때문에 해당 시행령이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없어 원고패소 판결했다. 행정처분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리려면 일반적으로 행정처분의 근거가 된 시행령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확정판결이 있어야 한다.

재판부 관계자는 “취소 청구소송이었다면 원고 승소의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며 “시행령의 위법·위헌 여부가 쟁점이 아니었음에도 이에 대한 재판부의 견해를 판결문에 밝힌 것은 향후 시행령 개정 움직임이 일거나 유사 소송이 발생할 경우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비록 원고패소 판결이 내려졌지만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법원이 판결과는 별도로 이 같은 견해를 밝힌 것은 성적 소수자에 대해 진일보한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발간한 중학교 및 고등학교 교사용 성교육 지침서에는 이미 “동성애도 하나의 인간적인 삶인 동시에 애정의 형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동성애자들의 진정을 받아들여 올 4월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7조에 열거된 청소년유해물 중 ‘동성애’를 삭제해달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행정처분에 대한 취소 청구소송은 행정처분이 있었던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제기해야 하는데 엑스존 운영자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 결정을 받은 지 1년여가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돼 불가피하게 무효 확인소송을 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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