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도청가능 은폐]“지자체예산에 秘話단말기항목”

  • 입력 2003년 10월 6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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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국감에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비화 모듈(칩)이 달린 휴대전화기 자료를 보여주면서 휴대전화의 도청 가능 여부를 캐묻고 있다. -서영수기자
1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국감에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비화 모듈(칩)이 달린 휴대전화기 자료를 보여주면서 휴대전화의 도청 가능 여부를 캐묻고 있다. -서영수기자
《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정보통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비서관 및 일부 국무위원들이 도감청을 막는 비화 기능 칩이 내장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휴대전화 도감청 가능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특히 그동안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안심하고 써도 된다”고 밝힌 정부가 지난해부터 전국 각 기관에 비화 휴대전화 보급 계획을 마련한 사실이 확인된 만큼 이제라도 도감청 가능성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 및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왜 정부는 비화 휴대전화 도입하나”=한나라당 박진(朴振)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정통부가 국가지도무선망 사업의 일환인 ‘충무 4300’을 기초로 2001년 각 정부 기관에 내려 보낸 공문에 따르면 각 지방자치단체는 정통부의 지시로 비화 휴대전화 및 이용요금까지 예산에 반영토록 했는데 무조건 휴대전화 도감청이 안 된다면 국민이 믿을 수 있겠느냐”고 질의했다.

박 의원은 또 “부산시는 올 예산에 1년치 이용 요금을 책정했고 전남도청도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며 “특히 부산시 자료에 따르면 비화 휴대전화 구입비는 대당 50만원, 1개월 사용료는 3만원으로 되어 있다”고 밝혔다.

6일 국회에서 박진 의원이 제시한 부산시청 비화 휴대전화기 이용요금이 적힌 예산 관련 서류. -서영수기자

그는 이어 “현재 비화기능이 탑재된 휴대전화는 전 세계적으로 S, Q, P, N사 등 4개사에서 개발 발매하고 있고 청와대는 S사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청와대는 휴대전화의 비화 기능 도입을 추진해 온 국가지도무선망과 동일한 017번호 대역을 사용하고 있는데 017대역은 1999년부터 비화 서비스 제공을 준비해 왔다”며 “업계의 증언에 따르면 비화 휴대전화 개발이 지난해 완료됐다는데 이는 정통부가 비화 휴대전화 구입을 각 기관에 지시한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진대제(陳大濟) 정통부 장관은 “국가 비밀 사업이기 때문에 비공개로 답변하겠다”며 국감을 비공개로 전환해줄 것을 요구했다가 추후 “비화 휴대전화를 구입하려고 했으나 도감청이 안 된다고 해서 계획을 취소했다”고 말해 의원들로부터 답변이 군색하다는 질타를 받았다.

▼휴대전화 도청 논란 안팎▼

▽비화 휴대전화 사용 실태=본보 취재팀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청와대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비화 모듈은 휴대전화 내부에 부착하는 ‘칩’ 형식이다. 이 칩은 경호실의 지휘를 받는 청와대 통신파트에서 일괄 설치했다고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말 성능이 개선된 비화 휴대전화를 지급할 계획이었지만 당시 국가정보원 도청 논란(본보 2002년 10월 25일자 A1면 보도)으로 국정원이 도청 책임을 뒤집어 쓸 것 같아 보류됐다가 올 4월 뒤늦게 지급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가지도무선망’의 연결대상인 정부 부처, 검찰청 경찰청 등 각 외청, 지자체 등 81개 기관에 88대의 비화 휴대전화를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최근 청와대의 지시로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휴대전화는 청와대 등 일부 기관에는 2대씩, 정부 각 기관에 1대씩 지급될 계획이었다.

▽도청 가능성과 정부 입장=99년 국정감사에서 도청 의혹이 제기된 이후 해마다 도청 논란은 끈질기게 이어졌고, 정부는 일관되게 ‘현실성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해 왔다. 하지만 이날 국감에서 진 장관이 “휴대전화를 감청하면 들을 수만 있다”고 밝히면서 휴대전화 도감청 가능성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불가능→기술적으로 불가능→말할 수는 없고 들을 수만 있다’는 식으로 점차 변하고 있다.

실제로 진 장관은 지난달 23일 정통부에 대한 국감에서는 “휴대전화 비화장치를 개발 중이나 아직 상용화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비화기 개발 가능성을 낮게 봤으나 이날은 “도감청은 어렵지만 비화기 개발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도감청 업계에서는 “CDMA 휴대전화가 도감청된다는 주장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예상되는 경제적 파장을 고려한 정부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도감청 불가론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울∼평양간 직통선이 운용되던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의 상황실에서 도감청 차단 업무에 참여했던 한 전문업체 사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2000년 말 대기업 등 주요 고객에 ‘휴대전화 도감청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내용의 안내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 문건은 “지금까지 기술상의 어려움으로 도청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던 CDMA 디지털 휴대전화의 도청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고객 제위께서는 산업스파이 활동에 대비해 휴대전화를 사용하시는 데 있어서 통신보안을 더욱 철저히 준수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되어 있다.

또 CDMA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정보통신업체 I사의 J사장도 최근 기자와 만나 “대기업 S사 연구원으로 일하다 국가정보원으로 자리를 옮긴 친구로부터 98년경 ‘CDMA 휴대전화 도감청이 가능한지 검토해 달라’는 의뢰를 받기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 의견=익명을 요구한 정부 및 업계 관계자들은 “하루속히 휴대전화 도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정치사찰에 악용하지 않는다는 공감대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불법 도청의 경우 법적인 처벌 근거를 만든 뒤 비화 휴대전화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계 내부에서는 휴대전화가 도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데 정부만 이를 부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비화(秘話)휴대전화란…암호체계 2중으로 설치▼

일반 CDMA 전화기도 사람의 음성 데이터를 암호화해 주고받는다.

그러나 휴대전화에 고유하게 부여된 일련번호(ESN)를 복제하거나 유선구간을 이용하면 도감청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

이 같은 도청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CDMA 전화기의 41비트 암호키에 별도의 암호체계로 이중 도청방지를 한 것이 비화휴대전화기. 비화 장치는 송신자의 음성 데이터를 다시 한번 암호화하며 전화를 받는 사람은 비화단말기를 통해 암호를 풀어 음성을 듣는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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