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최종천, ‘없는 하늘’

  • 입력 2003년 10월 6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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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새장에 갇히자마자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새는

의미가 아니어도 노래했지만

의미가 있어야 노래한다

하늘과는 격리된 날개

낱알의 의미를 쪼아 보는 부리

새의 안은 의미로 가득하다

새는 무겁다

건강한 날개로도

날 수가 없게 되었다

주저앉은 하늘 아래에서

욕망을 지고 나르는

인간의 등이 휘어진다

읽는 이마다 시구를 바꿔 되뇔 것이다. 아이는 ‘학교에 갇히자마자 새 됐다’, 아빠는 ‘회사에 갇히자마자 새 됐군’, 엄마는 ‘집구석에 갇히자마자 새 됐어’. 모두들 낱알을 쪼러 새장으로 출근을 하고 새장으로 퇴근한다. 저마다의 새장에 갇혀 올려다보는 하늘이 이루지 못한 욕망의 크기만큼 푸르다.

저마다 갇힌 새장의 새를 어떻게 꺼낼 것인가? 의미(학생, 가장, 주부)를 버리고 푸른 하늘로 날아갈 것인가? 초월할 것인가? 마당이 주춧돌을 집어던지고, 주춧돌이 기둥을 버리고, 기둥이 지붕을 벗고 모두 다 새가 될 것인가?

가장 훌륭한 초월은 월담이 아니라 제가끔 제자리에서 자기가 되는 것임을 저 시인이 모를 리 없다. ‘없는 하늘’이란 교묘히 절망을 위장한 희망이다. ‘있는 하늘’의 바깥을 최대한 넓히려는 위장이다. 새장을 우주의 끝까지 넓히면 우리는 갇힌 것인가, 풀려난 것인가? 조카 녀석이 개울에서 송사리를 잡아 어항에 둘까 하다가 팔당댐에 던져 넣으며 가로되 ‘삼촌, 꽤 큰 데다 가뒀지?’ 응 근데 저걸 어떻게 꺼낼꼬?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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