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주민투표제 낭패 보지 않으려면

  • 입력 2003년 7월 29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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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 하반기 시행계획을 밝힌 주민투표제는 지역행정에 주민의사를 직접 반영해 실질적 지방자치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제대로 운용된다면 쓰레기매립장 설치 등 이해당사자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 현안을 해결하고 자치단체장의 일방적 행정을 견제하는 등 풀뿌리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주민투표가 남용될 경우 지방자치 발전에 오히려 지장을 가져올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 투표대상과 범위가 명백하지 않고 자치단체의 필요에 의해 자의적 변경이 가능하다면 사안에 따라서는 주민투표로 인해 자치 행정이 마비되거나 자치단체장의 책임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주민투표운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자치단체장에 대한 사전선거운동을 벌일 소지 또한 적지 않다.

특히 충분한 정보와 정책적 판단을 바탕으로 합리적 결정을 해야 할 주요문제가 포퓰리즘에 휩쓸린 다수결에 의해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직접참여정치 대신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우려 때문이다. 목소리 큰 일부 이익집단의 집단이기주의에 휘둘릴 수도 있다. 지방자치와 주민참여 확대를 위한 주민투표제가 지방의회의 기능을 무력화시킨다면 풀뿌리민주주의는 오히려 뒷걸음치게 된다.

법적 구속력은 없다지만 특례조항으로 관련부처 장관이 국가 주요정책을 ‘자문형 주민투표제’로 결정할 수 있게 한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정부가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특정정책을 정부의도대로 밀어붙이는 데 활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참여를 내세우는 노무현 정부하에서 각 지자체가 주민투표 만능주의에 빠질 경우 인력 예산낭비 및 정책 난립을 자초할지도 모른다.

주민투표제가 민주당의 대선공약이기는 하지만 정부는 공청회 등 각계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문제점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한 다음 시행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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