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75…아메 아메 후레 후레(51)

  • 입력 2003년 7월 24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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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이분들 데리고 여관으로 가지. 나는 이 처자하고 마차 타고 잠시 돌아보고 올 테니까.” 사냥모 쓴 남자는 동그란 안경 낀 청년에게 그렇게 말하고, 마차들이 서 있는 역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정말 취했나봐, 하지만 마차도 타보고 싶고, 다롄 거리도 보고 싶고,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그대로 다롄항에 간다니까 거리 구경할 시간이 전혀 없잖아. 소녀는 빗방울을 퉁겨내는 폭넓은 포장도로를 보았다. 석조 양식 건물, 합승버스, 벽돌 담, 꼼꼼하게 세공한 철문…. 8월이 어언 끝나간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시원한 바람에 아카시아 잎에서 빗물이 후드득 후드득 떨어지고, 소녀는 그제야 새삼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무슨 냄새지, 구린 냄새, 논도 밭도 없는데 왜 이런 냄새가 나는 거지. 소녀는 콧구멍을 한껏 벌리고 사방을 돌아보았다. 말똥이었어, 여기저기, 아이고 온통 말똥이네, 밀양에는 인력거는 많아도 마차는 역 앞에 한 대밖에 없어서 길바닥에는 개똥이나 널려 있는데. 소녀는 말똥을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면서 갑자기 말이 없어진 남자의 등을 쫓아갔다.

남자가 손을 들자 마차가 다가왔다.

“일단 대광장으로 가주시오.” 남자는 발 받침대에 다리를 올리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알겠습니다.”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자 말이 따각따각 움직였다. 마부 자리에 달려 있는 등불 두 개의 불꽃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사실은 그냥 걸어 다니면서 하나하나 차분하게 보고 싶지만, 나는 관광하러 온 게 아니니까, 여긴 스쳐 지나가는 장소야, 두 번 다시 찾는 일이 없을 장소….

“예쁘다.”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조선말로 중얼거렸다가 일본말로 고쳐 말했다.

“정말 예쁘네요.”

도로 양 옆에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는 가로등이 빗속에서 뿌옇게 빛나고 있다. 쉰, 아니 백개는 될 것 같은데.

“하얀 빛도 아니고, 이렇게 파르스름한 빛, 처음 봐요….”

“아카시아꽃은?”

“본 적 없어요.”

“가로등하고 나란한 저 나무는 전부 아카시아다. 5월이 되면,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지. 그때쯤 이 거리는 온통 향긋한 꽃향기로 넘친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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