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알렉산드르 보론초프/휴대전화 든 평양사람들

  • 입력 2003년 7월 16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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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북한을 다녀왔다. 7개월 만의 북한 방문이었지만 많은 변화가 느껴졌다. 평양 시내의 전력 사정은 좋아진 것 같았다. 주택가의 불빛도 더 밝아졌다. 스웨덴의 ABB를 비롯해 외국 기업들이 맡아서 해 온 발전설비 현대화작업이 끝난 덕분이라고 한다. ABB는 시내 전력공급망 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곳곳에서 건물 신축이나 재건축공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가장 큰 관심은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경제개혁의 결과였다. 과거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개혁’이라는 말을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북한의 구세대는 ‘개혁’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있는데 개혁을 시작한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몰락했던 기억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가 조치’라는 말을 선호했었다.

평양 동부에 있는 모란봉 봉제공장을 방문했다. 이곳은 국가경제의 긍정적 변화를 보여주는 예로 꼽히고 있다. 지배인은 외빈의 방문이 잦다고 말했다. 7층 건물에 대부분 여성인 110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었다. 생산품의 20%만이 내수용이고, 나머지는 미국 일본 홍콩 등으로 수출되는데 30%는 한국으로 팔린다고 했다. 공장을 방문했을 때 일본 오사카로 보낼 제품을 한창 포장 중이었다. 공장의 수익은 연간 150만유로이고 직원들의 임금은 3000∼1만원으로 평균 임금은 5000원이었다. 이것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정부기관의 중간 간부들보다 높은 것이다. 개혁 전에 이 공장 직원들의 임금은 150∼200원이었다. 500명의 직원들이 하루 150t의 맥주를 생산하는 대동강 맥주공장에서는 영어나 독일어가 쓰인 현대식 설비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도 새로운 모습 중 하나였다.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한 친구는 벌써 운전 중의 휴대전화 사용이 문제가 될 정도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판문점이나 비무장지대 방문 요청도 거부하곤 했던 북한 당국이 이번에는 군부대와 일반 가정의 방문을 허용했다. 평양 광복 거리에 있는 80m²의 방 4칸짜리 아파트에 사는 가족을 찾아갔다. 예비역 장성 출신으로 은퇴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젊은 부부와 6세 된 아들로 이뤄진 가족이었다. 남편은 외무부 관리고 부인은 상점 판매원이었다. 물론 식료품이 가득 찬 커다란 일제 냉장고에 3대의 텔레비전, 컴퓨터를 갖추고 사는 이 가족이 북한의 평균적인 가정을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가족은 자연스럽고 친절하면서도 사교적으로 우리 일행을 대했다.

평양시 경계에 있는 대공부대도 방문했다. 군사훈련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태권도 훈련을 참관하고 병사들도 만났다. 장교들은 미국 워싱턴으로부터의 최근 뉴스와 위기 상황에 있는 북-미 관계, 미국 정치 엘리트들의 시각과 성향 등을 궁금해 했다. 이들과 이야기하는 동안 북한이 의도적으로 미국의 공격을 유발할 의사는 없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미국이 핵시설에 대한 제한적인 공습을 할 경우 북한의 대응은 신속할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이 점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제한 공격은 더 치명적인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군사력이 무력해지기 전에 온 힘을 다해 즉각 대응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북한의 반격 목표는 중심가에 미8군이 주둔하고 있는 서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상황은 1993∼1994년과 비교해볼 때 극적이지도 않고 평온하다. 미국에 대한 선전선동의 논조도 훨씬 자제돼 있고 방공 훈련이나 등화관제 훈련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는 미국의 공격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 것 같았다.

북한을 둘러보면서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경제개혁이 ‘핵위기’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으며 내부 상황이 안정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 미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것을 피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알렉산드르 보론초프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한국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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