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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철칼럼]'뜨거운 감자' 더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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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철칼럼]'뜨거운 감자' 더 뜨거워진다

입력 2003-07-16 18:01수정 2009-10-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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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서 이번처럼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쥔 것은 처음일 것이다. 그것도 딴 사람이 아닌 한집안 머리 큰 사람들이 구워 낸 뜨거운 감자다. 급한 김에 우선 내려놓기는 했지만 그 뒤처리가 말끔하지 않다. ‘굿모닝시티’ 로비 의혹 여파로 불거진 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거취 문제와 대선자금 내용은 집권층의 내부 갈등과 파워게임의 미묘한 일단을 드러낸 것이다.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이 정 대표를 겨냥해 날린, ‘나 같으면 물러나겠다.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는 직격탄에 실린 의미를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나라면 은퇴’는 압력 ▼

정 대표가 역대 어느 정권에서건 민감한 치부인 대선자금 내용을 언급한 데 대한 응징적 반응이라는 풀이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 권력 핵심부에서 형성돼 온 정 대표의 궁극적인 거취에 대한 내심이 엉겁결에 표출된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문 실장은 정 대표와의 회동에서 자신의 발언을 ‘정 대표의 정계 은퇴’로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은 ‘내가 돈을 받았다면 물러나겠다’는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따지고 보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궁박한 처지의 정 대표에게 자신을 예시하면서 ‘정계를 떠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사실상 ‘은퇴 압력’이 아닌가. 더욱이 대통령비서실장이 한 말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오해가 풀렸다고 하지만, 그렇게 보지 않는다. 권력투쟁 양상이 너무 빨리 터져 버렸다는 중압감에 얼른 덮었을 뿐 갈등의 본질이 없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의중에 누구보다 가깝게 접해 있는 인물이다. 역대 정권에서 보면 왕왕 대통령의 의사를 대변해 온 경우가 많다. 공사간의 정리상 대통령으로서는 차마 하기 어려운 역할의 대역이기도 했다. 가까운 예로 DJ정권 초기 가신그룹 동교동계가 신·구파로 갈라지며 힘이 양분됐다. 아직도 정치판에선 당시 그 중심엔 김중권 대통령비서실장의 대역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이번 ‘나라면 은퇴’의 경우, 문 실장의 발언이 노 대통령과의 교감을 거쳤건 아니건간에 앞으로 파장은 두고두고 밀려 올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사태 추이를 살피면서 막판에 꺼내야 할 초강수를, 그것도 공개적으로 너무 서둘러 던진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서둘러 해명하고 ‘화해’할 일이라면 왜 그리 서둘러 사단을 만들었단 말인가.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둘러싸는 두꺼운 완충막이다. 굼떠서도 안 되지만 앞서 나가는 일은 금물이다. 노 정부 들어 간단없이 되풀이돼 온 ‘발언과 해명의 악순환’은 이번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표현이 잘못된 건지, 진의가 너무 빨리 표출된 건지는 곧 드러나게 마련이다. 뜨거운 감자를 우선 내려놓기만 했다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해결이 안 됐다는 뜻이다.

문 실장의 발언으로 당내에서 고개를 들던 정 대표의 ‘용퇴론’이 두 사람 회동 이후 주춤하면서 정 대표의 대표직 유지 쪽으로 가닥이 잡혀 가는 분위기다. 신당 창당을 추진해 온 민주당 주류나, 민주당 구당(救黨)을 내세운 비주류나 이 시점에서 정 대표의 역할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정 대표는 민주당 주류 핵심이면서도 비주류와 갈라서는 분당만은 안 된다는 소신을 내세워 왔다. 신당 추진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을 들어 왔지만 주류와 비주류를 연결하는 그나마 남은 유일한 고리라고 생각했는지, 신기하게도 지금 민주당은 ‘정 대표 살리기’에 나선 인상이다.

▼당과 검찰 사이의 대통령 ▼

이 와중에서 노 대통령은 난처할 것이다. 당정 분리를 선언한 마당에 이래라저래라 하기도 거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 실장의 발언으로 한바탕 소동을 겪은 터가 아닌가. ‘정 대표 문제는 본인과 당에서 알아서 처리할 일’이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아무래도 미진해 하는 것 같다. 정 대표는 시간을 벌 수 있을 때까지 벌어 보겠다는 이야기인데, 막상 지금 밖으로 비치는 이미지는 대단히 고약하다. 정 대표의 검찰 출석을 놓고 이미 예각의 대치상황에 접어든 민주당과 검찰의 관계에 언제까지 손놓고 있을 수 있겠는가. 당정 분리를 아무리 내세운다 하더라도 시중에 비치는 모습은 하나의 노무현 정부다. 당정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당과 정에서 택일(擇一)하라는 압력일 수도 있다. 대통령에겐 이것이 더 뜨거운 감자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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