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장관님 말씀' 주워담기

  • 입력 2003년 7월 14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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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중(金花中) 보건복지부 장관은 14일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만성질환자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환자가 병의원 등 요양기관에 직접 내는 본인부담 상한액을 차등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본인부담 상한액으로 고소득자는 300만원, 저소득자는 200만원을 각각 검토 중이며 원래는 봉급 기준으로 상한액을 정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건강보험 가입자들을 더 많이 지원하기 위해 본인부담 상한액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달 초 상한액으로 300만원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고 김 장관의 이날 발언은 그 후속편인 셈이다.

김 장관이 이날 말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구분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 주무과인 복지부 보험정책과에 문의했다.

보험정책과 관계자는 “상한액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는 국회에서도 많이 제기됐지만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라며 난감해 했다.

이 관계자에게 ‘봉급 기준으로 상한액을 정한다는 내용은 뭐냐’고 묻자 그는 “봉급으로 상한액을 정한다는 것은 실무적으로도 검토한 적이 없다. 그럼, 봉급을 받지 않는 사람의 상한액은 어떻게 하나. 참 답답하네, 나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장관이 앞서가고 복지부의 해당 부서 공무원들이 장관의 말을 수습하려고 허둥대는 모습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김 장관은 5월 말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 참석한 뒤 귀국하자마자 기자실에 들러 “담뱃값을 대폭 올려 흡연율을 낮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장관의 발언으로 기자실이 순간 술렁거렸고 ‘그럼, 얼마를 올리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갑당 3000원은 돼야 한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있었다”며 “나도 같은 생각이다”고 밝혔다.

김 장관의 돌출 발언 후 복지부 공무원들은 선진국의 담뱃값 등 미처 준비하지 못한 자료를 확인해 알려주느라 한동안 법석을 떨었다.

김 장관은 취임 직후 복지부의 보육업무를 여성부로 옮겨야 한다고 공언했다. 정부 기능을 손질해야 하는 중대 사안이지만 실무부서의 검토도 없이 불쑥 말을 꺼낸 것이다.

이 때문에 업무 이관에 반대하는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 등 이해당사자들의 시위로 홍역을 치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김 장관의 발언 내용은 복지부가 마땅히 추진해야 할 사안들이다. 그러나 이를 대외적으로 밝힐 때는 충분한 내부 검토와 부처간 협의를 거쳐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장관으로서의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이진 사회2부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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