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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성(性)을 말하다'…부부와 사제의 진솔한 性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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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성(性)을 말하다'…부부와 사제의 진솔한 性고백

입력 2003-07-11 18:14수정 2009-10-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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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을 말하다/크리스토퍼 스팔라틴 외 지음 황애경 옮김/200쪽 8500원 부키

3명의 남녀가 자신들의 성적 체험에 대해 차례로 고백한다.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는 부부 사이이며, 또 한 명의 남자는 사제(司祭)다! 배경만으로도 독자의 즉물적인 관심을 끄는 이 책은 매우 적절한 타이밍에 도착했다. 성 담론에 관한 한 지금 한국사회는 가히 뜨거운 용광로가 아닌가.

젊은 남녀의 동거를 다룬 공중파 드라마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여자 연예인들의 누드 사진집 출간이 붐을 이루고 있으며 인공낙태는 더 이상 놀라운 화젯거리도 아니다. 성이라는 메타포는 이제 은밀한 사적 영역을 벗어나 개인의 일상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요소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동거남녀는 그 부모로부터(정확히 말하면 여자의 부모로부터) 결혼각서에 도장을 찍으라는 압력에 시달리고, 헤어 누드의 여배우들은 단지 ‘예술’을 위해 벗었을 뿐이니 음흉한 시선은 거두라고 요구하며, 미혼여성들은 스스로의 임신중절 경험에 대해 입도 뻥긋 하지 않는다.

이런 풍문과 모순의 시대에 ‘성을 말하다’는 그 간결한 선언투의 제목처럼 밝고 반듯한 방식으로 핵심에 접근하고 있다. 3명의 필자는 각 장에 제시된 주제에 따라 자신들의 체험을 이야기한다. “내가 처음 성을 자각했을 때는?”이라는 질문에 대해 ‘짐’은 열 살 무렵 누드 잡지를 보고 느꼈던 흥분과 죄의식을 담담히 술회하고, ‘잰’은 동성 여자아이와의 애무 경험에 대해 고백한다. ‘혼전성교’의 장에서는 “짐과 내가 결혼할 때 우리는 동정이었지만 그 전에 얼마나 섹스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준비하고 기다린 것은 그 뒤에 변치 않는 신뢰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결론 내린다.

친구 부부와 함께 이 책을 기획하고 집필한 크리스토퍼 스팔라틴은 천주교 예수회 신부이자 38년 동안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미국인이다. 그는 ‘결혼준비특강’이라는 강좌를 개설, 토론식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로맨스와 섹스, 결혼 등에 대한 가치관을 정리하고 개인적 경험을 공론화하는 훈련을 하도록 가르쳤다. 다음과 같은 그의 진술은 이 책의 주제를 명백히 함축하고 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학생들이 점차 자신감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도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좋은 예가 되었으면 한다.’

과연 우리에게 성은 무엇인가. 우리가 언제 성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가. 이 시대에 성은 인간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된 것은 아닌가. 꼬리를 무는 의문 속에서 이 책은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는 일이 곧 삶을 사랑하는 일임을 차근차근 낮은 목소리로 일러준다. 다만 ‘건전한 결혼제도’ 너머의 이슈들―매매춘, 포르노그래피, 동성애 등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온 사람들은 이 책의 문제의식이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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