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담]'양지의 화두' 화가 김점선-조영남의 대담

  • 입력 2003년 7월 10일 16시 25분


코멘트
“화투그림은 내가 원조야.”(조영남) “그럼 내가 겁도 없이 도전했네.”(김점선) . 두 사람이 앉은 소파 뒤쪽 벽에 걸린 액자에는 조영남씨가 20여년간 그려온 화투그림이 담겨 있다.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화투그림은 내가 원조야.”(조영남) “그럼 내가 겁도 없이 도전했네.”(김점선) . 두 사람이 앉은 소파 뒤쪽 벽에 걸린 액자에는 조영남씨가 20여년간 그려온 화투그림이 담겨 있다.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화가 김점선씨(57·여)는 예의 자유로운 복장이었다. 색 바랜 하늘색 반팔 셔츠에 검은색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고 허리엔 남색 스웨터를 둘러 맸다. 그리고 빨간색 운동화를 신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현대아파트.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씨(58) 집에 들어서자 조씨가 맨발로 김씨를 맞았다. 검은색 반팔 티셔츠에 바지 차림이었다.

조씨에게 짧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마루로 올라선 김씨는 이내 긴 소파에 무릎을 감싸 쥐고 올라앉았다. 조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마루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거실 창 너머로 한강이 내려다보였다.

2003년 7월 6일 일요일 오후 5시. 김씨와 조씨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서로 일면식도 없던 김씨와 조씨를 연결한 매개체는 화투다. 조씨는 20여 년 전부터 화투를 소재로 그림을 그려왔고 중견작가인 김씨는 컴퓨터로 그린 화투 그림으로 8월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생각과 행동으로 잘 알려진 두 사람이 화투에 끌린 까닭이 궁금했다. 이 자리에는 두 사람 모두의 친구인 성악가 강미자씨(58·여)가 함께했다. 김씨와 조씨는 탐색전을 하듯 강씨를 사이에 두고 띄엄띄엄 이야기를 시작했다. 뜻밖에 두 사람은 고스톱을 할 줄 몰랐다.

●오십견

조영남=덧셈 뺄셈이 싫어. 그게 귀찮아서 화투를 안 한 것 같아.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육백’을 배웠는데 그때는 머리가 잘 돌아간 것 같아. 다 까먹었어.

김점선=(조영남의 화투 작품을 가리키며) 난 이렇게 화투 안 그려요. 컴퓨터 안에서만 그려요.

조=저는 컴퓨터에 손을 대본 적이 없어요. 기계에 아주 질색이라.

김=(조씨 그림을 보며) 그리는 데 시간 많이 걸리겠다. 내 그림은 한 장 그리는 데 15분도 안 걸려.

조=나는 컴퓨터 그림이라는 게 무슨 뜻인 줄 모르겠어.

김=(당신이) 컴맹이니까 얘기를 해도 몰라. 오십견 때문에 팔을 못 써서 고통을 잊어보자고 시작했어요.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면 정신이 팔려서 고통을 잊으니까. 처음에는 그림 그릴 생각 못하고 아픈데 자판이나 익히자고 했는데 컴퓨터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니까 그리기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냥 마우스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아들이 와서 보고는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이렇게 잘 그리냐”면서 포토샵하고 펜마우스를 설치해줬지.

조=오십견은 언제부터 왔어요?

김=재작년 겨울에 드로잉전(展)을 했는데 30점을 주문받았어. 굉장히 짧은 시간에 팔을 많이 썼어요. 어느 정도냐면….

조=나도 저릿저릿할 때가 있어요.

김=그 정도가 아니라 (어깨 위로 오른팔을 올려 그리는 동작을 취하며) 팔이 이렇게 하다가 아래로 딱 꺾어져.

조=불현듯?

김=의지와 관계없이.

조=불현듯?

김=그냥 픽 떨어지죠.

조=허허허허.

●화투? '엿먹으라'는 것

'똥광' (디지털 그림, 2003년 , 김점선/'극동에서 온꽃'(캔버스에 혼합재료, 1999년, 조영남)

김씨는 자신의 그림이 인쇄된 화투 한 벌을 가져왔다. 이 화투에는 상대방 피 한 장씩을 가져올 수 있는, 김씨의 얼굴이 그려진 ‘보너스’패 2장과 아무거나 가져올 수 있는 ‘지화자’패, 그리고 ‘부귀영화’패가 들어 있다. 조씨는 화투를 마루에 죽 뿌려놓고는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봤다.

조=화투를 처음 그린 건 언제예요?

김=작년. 컴퓨터로 그린 화투 그림을 친구들한테 보냈더니 “우아, 재미있다”고 해서 계속 그린 거야. 발표는 올해 했는데 그림을 딱 걸어 놓으니까 오는 사람마다 “조영남, 조영남” 하더라고.

조=내가 화투는 독점했나봐. 화가 조덕현이가 4년 전인가, 화투를 그리려고 스튜디오에 갖다 놓았더니 학생들이 “조영남이 그렸는데 또 그려서 뭐해요” 그러더래. 그래서 안 그렸대.

김=나는 화투 그릴 때 출발점이 반항이야.

조=저도 그래요. 똑같아.

김=문화의 엄숙주의에 대한 “웃기고 있네. 이런 거나 그려서 놀리자” 이거지.

조=엿 먹으란 거죠. 조선놈들이 화투를 가장 좋아해. 상징적으로 태극기보다 더 좋아해. 없이 못살잖아. 그런데 이 인간들이 화투치는 걸 아직도 창피해 한다고. 이중성이야.

김=응, 이중성이야.

조=큰 이중성이야. 그러면 안 된다는 거지. 치지를 말든가.

김=까놓고 해야지.

조=그러니까 화투 입장에서 얼마나 (사람들이) 비굴하겠어. 칠 때는 언제고 사람들 오면 숨기고 안 치는 척하고. 우리가 평생 그렇게 살아왔잖아. 아직도 그러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 이거지. 내가 처음에 화투 그린 게 79년이야. 처음에 ‘솔’ 껍데기에다 성경 창세기를 뜯어 붙였어요. 사실은 이게, 엿 먹으란 거지. 압권이야.

김=처음에는 나도 야유를 하려고 했어. 그런데 조금 다른 게 뭐냐면 도형적으로 화투는 색이 아주 강렬하고 단순해. 은은한 게 없는 거야.

조=이거 아니면 저거야. 모 아니면 도. 원색, 원색, 원색이야.

김=모든 이파리가 까맣고 딱 볼 때 느낌이….

조=까망 아니면 빨강. 그게 좋아요.

김=정말 내가 볼 때 그게 팝아트인데. 민중미술 운운하는데 진짜 가난한 사람들은 전두환 잡아가는 그림에 아무런 흥미가 없어. 오로지 화투밖에 몰라. 평생 미술관 한번도 안 가. 화투만 만지다 화투 그림만 보다가 죽는다고.

조=문제는 화투를 가장 좋아하면서 화투에 그림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인간들이 없어. 맨날 치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림으로 안 봐.

김=그러니까 화투를 칠 줄 모르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림으로 보고 좋아해요.

조=옳지, 맞아. 우리 예술가들의 역할이지. 계몽주의자의 역할. 화투를 안 치지만 구조를 한 걸음 떨어져서 냉정하게 볼 수 있는 거지.

김=시각적인 심벌을 사람들이 이때까지 버려두고 있었잖아.

조=멸시하고 그랬지.

김=우리가 그늘에 있는 걸 확 끄집어내고 확실하게 사랑하자, 이거지.

조=사람들이 이렇게 화투가 근사한 건 줄 몰라.

김=까놓고 사랑하자 그런다고 도박해서 집 날리면 안 되고. 시각적으로 민중의 자산 같은 거라고. 왜냐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른 건 몰라도 화투는 아니까. 크게 그려서 벽에 걸어 놓으면 “똥이다, 메조다” 금방 안다고.

조=처음에 미국에서 그리기 시작했는데 친구들이 하는 소리가 “다 좋은데 어떻게 화투를 애들 있는 집에다 걸어 놓느냐”였어요. 근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신념이 있었어. 나중에 두고 봐라. 10년 전부터 슬금슬금 팔리더니 요새는 화투 그림을 제일 많이 사.

김=“애들이 어쩌구” 하는 사람은 태극기 그림 걸어놓으면 되겠네.

●성조기와 태극기

조=작년 월드컵 때 여자들이 ‘태극기 브라자’ 하는 거 보고 속으로 ‘이제 태극기도 빛을 보겠구나’ 했어. 내가 올해 태극기 그림 전시하니까 막 사요. 야스퍼 존스라는 전설적인 팝아트 기수가 성조기를 그린 걸 알면서도 나는 태극기를 그렸지. 한국 화가들은 태극기를 안 그려. 야스퍼 존스 흉내낸다고 할까봐.

김=난 야스퍼 존스가 미국 국기 그리는 것을 팝아트 이론에서 배우면서도 이해가 안 되다가 한 10년 넘었나, 결혼하고 집에서 설거지하는데 ‘아 이거다’ 하고 깨달았어. “그렇게 좋아한다” 이거야. 야스퍼 존스는 애국심이 넘쳐서 깃발만 보면 그리는 거야. 우리도 왜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 보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때 있잖아. 그렇게 단순한 걸.

조=점선씨는 너무 감성적인 것 같고. 나는 독학으로 공부하니까 이론적으로 보면 팝아트의 출발이 변기 올려놓은 순간부터잖아. ‘뒤샹의 변기’ 말이야. 이미 있는 물건조차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거지.

김=우와, 혼자 공부했는데 되게 잘 했다.

조=그림으로 이 이론이 가장 들어맞는 게 야스퍼 존스의 성조기야. 성조기가 이미 그림이잖아. 야스퍼 존스는 이걸 그리면 미국 사람들이 자기 그림 좋아할 것이라는 계산에서 그린 거지. 나도 마찬가지고.

김=나는 방구석에서 그리고, 당신은 방송을 해서 세상을 월드와이드하게 돌아다니다 보니까 생각하는 게 다르네.

조=아니, 남자와 여자 차이야. 사실 여자 머리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요. 여자는 그림을 못 그렸어, 특히 현대미술에서는. 여자는 철학도 안돼, 논리가 짧으니까. 약간 ‘새과’이기 때문에. 여자 철학자가 어디 있어?

순간 김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강미자씨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고 김씨와 동행한 출판사 ‘마음산책’의 정은숙 사장은 “한나 아렌트도 있고 많잖아요. 조 선생님도 예전에 ‘남자’라는 책 평하시면서 남자가 얼마나 열등한 족속인지 얘기하셨잖아요”라며 따지듯 말했다.

조=나는 계산적으로 ‘저걸 그리면 틀림없이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러면 그게 맞는다니까.

김=아유. 그게 철학이냐. 미치겠네, 정말. 야, 원시에서 예술 출발할 때 철학적인, 사회적인 의미 아무것도 없어. 예술이라는 건 진짜 자기가 말(馬) 보고 ‘이거 멋있다’ 그러고 그리는 거지.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는데 무슨 여자, 남자가 있냐.

●아웃사이더

조=미술 전공하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늪이 있어요. 점선씨만 해도 선천적으로 많이 벗어난 타입이지.

김=그쪽(조영남)은 완전히 밖에 있었고 그쪽에서 볼 때 나는 안에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볼 때는 또 내가 아웃사이더라고.

조=그렇죠. 그 안에서도 아웃사이더가 안 된 사람들은 도태가 돼요. 점선씨는 사는 모습이라든가 이런 게 모두 아웃사이더로 일관해 다행스러운 일이고 살아남는 거지. 나는 아예 그쪽에 들어간 적이 없으니까.

김=안에 있는 사람들은 화투 그리라고 하면 스스로 무서워해요. 발을 안 내밀지. 나 같은 사람은 소속감이 없으니까 진창에 빠지든 말든 내 마음대로 하는데.

조=그렇죠. 나는 또 아마추어니까 뭘 그려서 사람들을 혹하게 할까가 제일 중요해.

김=피카소가 평생 동안 잡혀 있던 생각이 그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번 전시회에서 인간들을 확 뒤집을까.

조=네, 그거예요.

김=전시회를 하는데 인간들이 보는 둥 마는 둥 이걸 못 참는 거야. 욕을 먹어도 “우아, 저 미친놈 좀 봐라.” 이렇게 떼로 몰려와야 하는 게 피카소야.

조=그래서 내가 뭘 그리느냐는 아무 문제가 없어. 좌우간 내가 생각하기에 이걸 그리면 사람들이 틀림없이 길을 가다가 멈추고….

김=으악!

조=응. “으악” 하고 볼 것이다. 미술관이라는 게 전시해 놓으면 들어왔다가 그냥 쓱 가잖아. 보면 비슷비슷하고 뭔지도 모르겠고 물어보기도 그렇고.

김=말 시키면 장황하게 “이건 변증법적으로 어쩌고저쩌고” 하면 지겨우니까 다 도망가지.

조=그렇지. 나는 재미있으니까 쭉 보게 만들라고 하니까.

김=피카소랑 똑같아. 의식의 그 바탕이.

● 화투파(花鬪派)

조=내가 보니까 점선씨는 그림 그려 가지고 호화롭게 인생을 살려는 사람이 아니야. 그냥 그리지. 내가 가는 길하고 달라.

김=다행히 그림은 팔려서 나는 호화롭게 살지 않았지만 남편은 살았는데.

조=다행이야. 팔리는 건 화투 그림이 아니겠지.

김=말(馬) 그림.

조=그러면 괜찮아. (화투 그림을) 친구들한테 (공짜로) 뿌린다고 해도….

김=화투도 조영남 버전 화투도 나오고 (만화로 화투 그린)이우일 버전도 나오고 10대들이 그린 화투도 나와서 골라 사도록 해야 돼.

조=그렇지. 화투는 미학적으로 베리에이션이 무궁무진하잖아.

김=어쨌든 우리는 한국 화투 그림의 창시자들이네.

조=화투파!

김=하하하. ‘화투파’ 좋네. ‘그들은 화투를 칠 줄 모르기 때문에 화투를 그린다.’

조=더 강력하고, 아카데믹하게 ‘최초의 화투학파 결성’ 그러는 거야.

김=이우일도 부르고, 조덕현도 불러서 우리 이제 마음대로 그리자고 하는 거야. ‘화투학파전(展)’도 열고.

조=아주 좋아. 드디어 화투학파가 결성되는구나. 회장 부회장은 우리가 하자. 미대 출신 아니라고 그러지 말고 내가 먼저 그렸으니까 예우를 해줘. 평생 직함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어.

김=후배를 잘 둬서 회장 소리를 들어보겠구나.

정리=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김점선

1946년 황해도 개성 출생. 72년 홍익대 미대 대학원에 입학. 동생들 불러놓고 “너희는 학문에 대한 열정도, 야망도 없으니 그만 공부해라. 너희 월사금 내가 쓰겠다”고 선언해 돈 안 준다던 부모에게 등록금 받아냄. 72년 여름 제8회 파리 비엔날레를 위한 ‘앙데팡당 공모전(展)’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돼 등단. 77년 결혼. 98년 남편 세상 떠남. 83년 이후 30차례 개인전.아들이 입던 교복 셔츠에 후줄근한 바지, 남편 구두 차림으로 다니다가 노숙자로 오인 받기 10여 차례.책 ‘나, 김점선’, ‘10cm 예술’, ‘나는 성인용이야’.

●조영남

1945년 황해도 남천 출생. 가수이자 화가인 그를 ‘화수(畵手)’라고도 부름. 미국에서 신학공부 하던 79년 처음으로 화투 작품 그림. 이후 꾸준히 화투와 태극기를 소재로 작품을 내놓고 전시회도 10여 차례 가짐.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 최근 골프를 너무 좋아하는 한 여성 때문에 수년 전 안 친다고 다짐한 골프 다시 시작.‘히트곡 하나 없이 30년을 버텼다’는 말을 듣지만 ‘딜라일라’, ‘최진사댁 셋째 딸’ ‘화개장터’ ‘내 고향 충청도’ 등 히트곡을 남김. 책 ‘놀멘놀멘’ ‘태극기는 바람에 펄럭인다’ ‘예수의 샅바를 붙잡다’ 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