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교 안에 학원 차리나

  • 입력 2003년 7월 9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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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학교 교실을 학원에다 사교육 장소로 임대해 주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이 같은 방안까지 내놓은 것은 참으로 ‘대책 없는’ 한국 교육의 특수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교육비를 줄이기는 해야겠는데 뾰족한 수가 없으니 학교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이런 기막힌 대책이 나오는 것이다.

학교 안에 학원을 차리는 것에 대해 학부모들은 반대해야 할지, 반가워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입장이다. 학교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일이지만 사교육비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찬성하는 학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 대책은 큰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강의의 질이 얼마나 보장될 것이며 실제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강의를 들을지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반면에 학교 교육이 잃을 것은 적지 않다. 교사들의 체면과 자존심에 더욱 금이 가게 될 것이고 학생들이 이런 교사들을 어떻게 바라볼지도 걱정이다. 기왕에 이 대책을 추진하려면 최대한 강의의 질을 확보해 ‘학교 밖 학원’에 맞먹는 역할을 해야 하며 부작용도 최소화하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몸 전체가 튼튼한 게 더 중요하듯이 교육부는 ‘공교육 살리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교육 대책은 교육정책에서 ‘곁가지’에 불과한 것이다. 교육당국은 사교육비 대책에 앞서 공교육 활성화 방안부터 국민 앞에 내놓았어야 했다. 먼저 공교육에 대한 새 정부의 비전을 제시한 뒤 사교육비 문제를 다루는 게 당연한 순서가 아니겠는가.

교육당국이 공교육 대책을 서두르기는커녕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 행정력과 시간을 낭비한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이번 사교육비 대책에서도 공교육 살리기라는 최대 과제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면 교육당국은 과감하게 공교육 쪽을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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