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 시절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로 몰려오면서 부시맨족의 운명은 처참해졌다. 1810년 갓 스무살이 된 한 부시맨 여성은 유럽으로 끌려가 5년 동안 알몸으로 우리에 갇힌 채 런던과 파리의 술집을 돌면서 남성들의 관음증을 만족시켜 주다 사망했다. 이 여성의 유해는 뇌와 성기가 제거된 채 ‘사라 바트만’이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인류학 박물관에 소장됐다가 작년에야 반환돼 고향 강가에 묻혔다. 스페인 바뇰레스시 자연사박물관이 100여년 동안 실제 부시맨의 박제를 전시하다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항의를 받고 철거한 것도 1997년이다. 과거 유럽인들은 부시맨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칼라하리 사막 일대의 부시맨족은 콩고분지의 피그미족과 함께 ‘가장 오래 전에 갈라진 현생인류’라는 사실이 최근 연구 결과 밝혀졌다. 일찍부터 인류학자들은 부시맨족을 ‘살아있는 화석’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양식이 인간이 정착하기 전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부시맨족은 사막에서 장기간 물이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그들만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이랴. 막상 지하에서 물이 나오자 그들은 백인들에 의해 사막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지금은 5만명 정도가 여기저기 정착촌에 흩어져 살고 있다.
▷영화 주인공 니카우가 최근 고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91년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마지막 10여년을 원래의 부시맨으로 돌아가 살았다. 문명의 맛이 아무리 달콤해도 자연 속 삶을 잊지 못했던 것 같다. 하기야 자연의 생명력을 희구하는 것은 문명세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나이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고 죽은 부시맨 니카우의 삶은 주말이면 승용차로 자연을 찾아 떠나는 문명세계 사람보다 불행했던 것일까. 영화 속 니카우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떠올리며 객쩍은 생각을 해 본다.
김상영 논설위원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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