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승모/대통령 비서실장 어디있나

  • 입력 2003년 7월 6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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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해 “도대체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 실장이 청와대에 들어간 지 4개월이 넘었지만, “언론이 이렇게 초장부터 대통령을 짓밟아도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던 정도가 인상에 남아 있을까, 달리 눈에 띄는 행적이 없으니 그런 말을 듣게도 됐다.

너무 대가 약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문 실장 본인은 “내가 2인자 소리를 들으면 나도 불행해지고 대통령도 불행해진다”고 받아넘기고 있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권력을 전횡했던 과거의 비서실장을 기대하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그는 대신 “참여정부의 2인자는 시스템이다. 참여정부는 인치가 아닌,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으며 청와대에 아마추어는 단 1명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정부가 시스템에 의해 조직적으로 돌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국정운영이 체계적으로 움직였느냐는 차치하고, 여권 내부의 의사소통만 봐도 시스템으로 움직였다는 평가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민주당 사람들의 청와대에 대한 불만 중 큰 부분은 “현안에 대한 당과 일반의 여론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청와대의 생각과 조치를 피드백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성향의 주류 의원들조차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대놓고 비판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 자체가 당-청간 대화 시스템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 비서실부터가 체계적이지 못하다. ‘새만금 소방헬기 시찰’ 사건으로 표면화한 비서진의 기강해이는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직원조회를 챙겨야 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다.

노 대통령은 7월 2일 조회에서 “대선 공신이라고 자꾸 공로를 내세우면 안 된다. 지난번에 보상차원의 인사가 있었으나, 보상에도 유효기간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자질보다는 논공행상에 따른 인사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386측근 실세 등 일부 젊은 비서진이 “나는 대통령과 직접 통한다”고 떠들고 다닌다는 말도 있다. 워낙 위계질서가 없다 보니 내부에서조차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은 조직도 아니다”는 개탄이 나오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거창하게 국정운영 시스템을 말하기에 앞서 비서실 내부 체계부터 다잡는 일이 시급하다. 국정 운영의 방향을 잡아줘야 할 대통령비서실이 중구난방인데 무엇인들 제대로 되겠는가.

청와대 조직 개편을 서둘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즉시 개편을 하기 어렵다면 우선 비서실장이라도 제 몫을 해야 한다. 최소한 비서실장을 두고 “윗사람 눈치 본다”거나 “아랫사람에 업혀 있다”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과거의 2인자 비서실장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의식한 듯 문 실장을 견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대통령비서실에 비서실장 외에 정책실장 국가안보보좌관 등 장관급 3명을 나란히 둔 것도 그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법적으로 엄연히 대통령비서실의 수장이다. 또 대통령을 가장 빈번하게 접촉하는 직책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비서실장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역할을 충실하게 행사하고,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것이 시스템 운영의 첫걸음일 것이다. 그걸 ‘2인자’라고 한다면, 비서실장은 싸움을 해서라도 그 자리를 찾아야 한다.

윤승모 정치부 차장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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