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교수 20년만에 지킨 '경제사' 출간 약속

  • 입력 2003년 7월 6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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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던 ‘경제사 입문’의 편역자로 이름이 알려진 대전대 김준호 교수가 새 저서 ‘경제사’(나남출판)를 내놨다. 1982년 ‘경제사 입문’ 출간 당시 서문에서 “본격적인 경제사 연구서를 근일 상신해 드리겠다”고 했던 약속을 20년 만에 지키게 된 것이다.

“당시 대학동기였던 김균(현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이 수배 중이던 친구들 몇 명이 번역한 것이라며 제 이름을 빌려달라고 했어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러라고 했지요.”

친구를 믿었던 그는 사실상 원고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이름을 빌려줬다. 게다가 이 책의 저본(底本)이 된 책은 그도 호감을 가지고 있던 일본 경제학자 시오자와 기미오(鹽澤君夫)의 ‘경제사입문(經濟史入門)’이었기 때문에 이 책의 출간에 이의 없이 동의할 수 있었다.

“이 책이 출간되자 웬만큼 사회과학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은 다 사서 읽는 것 같았어요. 너무나 반응이 엄청나서 ‘이런 탄압 국면 속에서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독재정권의 음모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을 정도예요.”

김 교수는 이름만 빌려 준 책이었지만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 속에 이 책에 관련된 문의에 답을 하면서 ‘편역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됐다. 또 이 때문에 학계의 ‘문제아’로 낙인 찍혀 대학 교수가 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정말 ‘경제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준비했고 오랜 준비 끝에 이번에 저서를 내놓은 것이다.

김균 교수는 김준호 교수에 대해 “대학 시절부터 대단히 재능이 뛰어난 친구였다”며 “그런 재능을 가지고도 조용히 틀어박혀 지내는 것을 보면 주역 점이나 치고 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번에 내놓은 ‘경제사’는 그의 집요한 문제의식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자본주의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어요. 그럴수록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했던 자본주의의 모습이 선명해지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경제사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지요.”

김 교수는 이 책을 경제사 개론의 형식으로 구성했지만 그 내용에는 고대 노예제사회의 보편적 타당성, 한국 중세의 국가봉건제 문제, 유통주의적 시각과 일국주의적 시각의 문제 등 논란이 될 만한 쟁점들을 많이 포함시켰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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