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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도시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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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도시락 풍경

입력 2003-07-03 17:05수정 2009-10-1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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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텁지근한 여름이 시작되는 요즘에는 눈 덮인 일본을 달리는 겨울 기차가 그립다. 기다랗고 산세가 험한 지형을 극복한 일본의 대표적 교통수단인 기차. 얼핏 떠올려보는 일본의 영화나 문학작품만 봐도 기차 신은 꼭 등장하기 마련인데, 뭔가 특별한 장면이기보다는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주기 위한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장면일 때가 많다. 기차를 타고 내리는 것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그저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지내는 시간이 오랜 만큼 차 안의 문화 역시 발달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도시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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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끼벤-역에서 파는 벤또

1885년 도쿄의 우에노(上野)역과 우쓰노미야(宇都宮)역을 잇는 철도가 개통됐을 때 우메보시(매실장아찌) 주먹밥에 단무지를 곁들여 역전에서 팔던 밥꾸러미가 에키벤의 효시였다고 한다. 에키벤이란 말 그대로 역에서 파는 벤또(도시락)를 칭하는데, 통계에 의하면 일본 내에서 판매되는 도시락의 종류는 2000종이 넘으며 그 중 대부분이 에키벤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도쿄역에서만 연간 600만개의 도시락이 팔린다고 하니 기차 도시락의 인기를 실감하고도 남는다.

에키벤의 종류를 몇 가지 보기로 하자. 긴 여정에 밥이 쉬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식초간이 애용된다. 밥을 따로 담고, 곁들이는 반찬으로 승부하는 경우에는 밥의 간은 한 듯 만 듯 가볍고 고슬하다. 자잘하게 나뉜 도시락 칸막이 속은 물을 들인 분홍 어묵, 노란 달걀말이, 검은깨를 뿌린 살구색 연어, 다홍색 우메보시 등으로 화려하게 채워진다.

반찬을 덧붙이기 귀찮아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조미된 밥꾸러미 형태의 도시락이 있다. 예를 들어 야들야들한 갑오징어 속에 잘 지은 밥을 채우고 불고기 양념맛을 닮은 달콤한 간장 소스에서 끓여내는 도시락이나 단촛물로 비빈 밥 위에 생선, 야채를 고루 올려서 대나무로 싼 형태의 도시락 등이 있겠다. 고등어나 장어를 조미해서 구운 뒤 밥 위에 덮어 만드는 꾸러미들도 인기 만점이다. 열차 안에서 조용한 매너로 일관하던 일본인들이 점심시간을 즈음해 일제히 도시락을 꺼낼 때 벌어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볼거리다. 이웃한 도시락들을 흘낏 보고, 감탄 섞인 인사도 해 가면서 그림 같은 밥을 오물오물 음미한다.

●센트럴파크의 뉴욕식 도시락

뉴욕은 파워풀하다. 도시 전체가 천정부지 시세를 자랑하는 소위 노른자 땅이건만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것은 대기업의 멀티쇼핑몰도, 시청도 아닌 바로 시민공원이라는 여유가 뉴욕의 힘이다. 도시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있어서 맨해튼 자체를 ‘센트럴파크의 남 혹은 북’이라고 구분할 정도로 이 공원은 규모와 위치가 압도적인데, 기온이 오르는 4월부터 추워지기 직전인 11월 초까지는 공원의 매일매일이 피크닉이다. 공원의 남쪽 끝인 5번가 부촌에서 일하는 명품 부티크의 지점장도, 중간 지점에 있는 예술무대에서 연습을 마친 예술가들도, 북쪽 끝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의 검소한 학생들도 모두 섞여들어 에너지를 충전한다. 눈에 띄는 먹을거리는 주로 빵 종류인데, 뉴욕의 대표적인 스트리트 푸드인 핫도그나 다양한 종류의 샌드위치가 대부분이다. 공동 공간 내의 음식냄새를 민폐로 여기는 뉴요커들의 특성상 김치를 동반한 도시락이나 바비큐 종류는 자제해야 한다.

뉴요커들은 늘 바쁘다. 잠시나마 공원에 앉아 여유를 구하지만 어서 점심을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간단히, 빨리 먹을 수 있는 래핑(wrapping) 푸드가 유행하는 것도 이 때문인 듯싶다. 납작하게 구운 밀가루빵인 피타 브레드(그리스빵)나 브리토(멕시코의 밀전병)로 닭가슴살과 야채 등을 꼼꼼히 말아서 만든 메뉴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입가심을 위한 커피를 파는 전문점이 공원 출구마다 즐비하다.

●고궁 내 김밥과 와인

여름비가 갠 평일 낮 선정릉 같은 도심 속 왕릉을 찾으면 그 한적함에, 그 낭만에, 그 고급스러움에 반하게 된다. 멀리 떠나기는 여의치 않고 시내는 답답한 이들에게는 왕릉에서의 런치가 제격이다. 특히 시내 데이트가 시들해진 연인들에게 권한다.

박재은

준비할 메뉴는 약식으로 싸는 김밥인데, 일본의 에키벤처럼 밥을 일단 밑간하고, 노란 단무지와 고기볶음만 넣어 얇고 작게 마는 것이다. 약식 김밥의 장점은 일단 준비 과정이 수월하고, 핸드백에도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용기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원하게 온도를 맞춘 와인 반병을 작은 보온병에 담아가서 물병에 딸린 컵에 따라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시면 로맨스 지수가 급상승할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덕수궁에서 석조전을 바라보는 벤치를 애용한다. 고궁 내 도시락 지참은 금지돼 있지만 벤치에 앉아 경내에서 파는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소풍을 나선 듯 경쾌해진다.

60년대 이후 일본의 에키벤 수입은 크게 늘지 않는다고 한다. 밥 먹을 틈도 없이 도착해 버리는 비행기의 보급 때문이다. 더 높이, 더 빨리 우리를 달리게 만드는 시간 속에서 ‘도시락’이나 ‘기차’ 같은 단어들이 얼마나 오래 전해질지 문득 궁금해진다. ‘영시 오십분의 대전발 기차’를 타고, 왕릉에서 비밀스레 도시락을 먹고, 갈 길이 먼 고속버스에서 졸던 모습이 박물관에나 걸릴 그날은 좀 늦게 왔으면 좋겠다.

박재은 파티플래너·요리연구가

●지라시 도시락

쌀 4컵, 물 4컵, 현미식초 1/2컵, 설탕 4큰술, 소금 2작은술,

간장 1 작은술

1. 평소보다 꼬들꼬들하게 밥을 한다.

2. 넓은 솥이나 나무 용기에 1의 밥을 고루 펴서 담는다.

3. 식초, 설탕, 소금, 간장을 잘 섞어서 2에 뿌리고 고루 비빈다.

4. 3의 밥을 도시락에 나눠 담고, 고명을 올린다.

※고명으로는 쪄 낸 생선이나 새우, 달걀말이, 아보카도와

생강절임, 김, 무생채 등을 권한다.

●이탈리안 치킨 랩

닭가슴살 200g, 토마토 2개, 모차렐라 치즈 100g,

로메인상추, 토마토소스 2큰술, 소금, 후추, 올리브유,

브리토 4장, 이탈리안 샐러드 드레싱

1. 팬에 올리브유를 달구어 닭을 익힌다.

2. 1의 한 면이 익으면 뒤집고 토마토소스를 첨가하여 마저 익힌다.

3. 2를 소금, 후추로 간하고 먹기 좋게 썬다.

4. 슬라이스한 토마토와 치즈, 상추는 이탈리안 드레싱을

넉넉히 부어 버무린다.

5. 브리토 위에 3의 닭과 4의 야채, 치즈를 얹고 단단히 말아준다.

※이탈리안 드레싱은 올리브유 1/3컵, 식초 1/4컵, 설탕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다진 양파 1/2큰술, 다진 피클 1/2큰술

그리고 다진 허브와 소금, 후추로 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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