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1920년대 신흥종교등 담은 '신도안 사진첩' 햇빛

  • 입력 2003년 7월 1일 20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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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동아일보에 처음으로 공개된 충남발전연구원 이길구(李吉九·계룡문화연구소장) 연구원의 신도안 사진첩에는 신흥종교와 계룡산 연구를 위한 중요한 단서들이 적지 않게 수록돼 있다.

우선 사진첩에는 1920년대 충남 논산시 두마면 부남리 용동리 석계리 등 신도안 일대에 있던 동명교회 불도교회 대화교 단군교 칠성교 우정동부락(무녀 밀집지역) 등 여러 신흥종교 교단의 성전 규모와 신도수 등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명동교회 신도안 포교당의 경우 사진과 함께 공사비 3000원을 들여 1920년 지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건물이며 신도수 3172명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이 연구원은 “정부가 종교정화사업을 벌인 1970년대 중반 이전에는 신도안 신흥종교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사진첩은 김연국이 이용구와 함께 손병희의 천도교에서 갈라져 나와 동학의 한 분파로 만든 시천교(侍天敎)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해 동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있다.

김연국의 별장과 시천교의 본당과 부속학교 전교실 등에 대해 기록했고 시천교가 8만원을 들여 정면 30칸 측면 10칸의 포교실을 만드는 대공사를 벌이고 있으나 후원금 부족으로 중단했다는 내용도 있다.

계룡산 연천봉(連天峰·739m)은 ‘연전봉(連顚峰)’으로, 대궐터를 닦던 인부들이 숙소로 돌아갈 때 신에 묻은 흙을 턴 것이 쌓여 이루어졌다는 용동리의 신털이봉은 ‘이탈봉(履脫峰)’으로 불렸다는 새로운 사실도 발견됐다.

사진첩은 평소에는 상인 300명 외에 3000명, 농번기에도 상인 100명 외에 1000여명이 모였다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의 기록들은 막연하게 ‘신도안 시장의 규모가 무척 컸다’고만 전하고 있다.

논산=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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