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 훈/누구를 위한 경찰인가

  • 입력 2003년 6월 27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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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경찰청에서는 예정에도 없던 기자회견이 마련됐다. 본보가 김영완씨 집 강도 사건이 청와대의 외압에 따라 은폐됐다고 사회면 톱기사로 보도한 이후 다른 언론사들의 요청에 따라 열린 기자회견이었다.

당시 지휘라인이었던 서대문경찰서 문귀환 수사과장과 이경재 강력2반장은 차례로 기자들로부터 ‘청문회’를 방불케 할 정도의 질문 공세를 받았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한결같이 “청와대라는 이름도 듣지 못했고 상부의 어떤 지시도 없었다”고 항변하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자신의 말이 거짓일 경우 ‘옷을 벗겠다’는 호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열변은 사전 각본에 따른 ‘입맞춤’이었으며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게 경찰의 자체 감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과 함께 일선 사건 현장을 뛰는 ‘사건기자’로서 27일 경찰청의 감찰 결과 발표를 지켜보는 심정은 이들에 대한 배신감이 아닌 서글픔이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살인의 추억’이나 ‘와일드 카드’를 보지 않더라도 일선 형사들이 어떻게 생활하며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는 많이 알려져 있다. 한 달에 절반은 잠복근무로 밤을 지새고, 이름도 다양한 숱한 ‘00작전’들 때문에 처자식 얼굴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일요일 하루도 제대로 쉬는 때가 없다는 것을 필자는 잘 안다.

더구나 김영완씨 도난사건을 수사한 서울서대문경찰서 강력2반 반원들은 100억원대의 강도 사건을 불과 두 달 만에 해결하고도 표창장을 받기는커녕 부정한 형사로 몰렸다. 마치 ‘죄인’이 된 모습이다. 이들은 상관을 보호해야 한다는 빗나간 ‘복종심’에 온 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에는 형사들에게도 작은 책임이 있지만 더 큰 잘못은 정권에 빌붙어 권력을 발휘하려는 보다 위의 ‘정치 경찰’들에게 있다.

정권 실세를 등에 업은 일개 경위가 치안감인 수사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청탁을 했다는 경찰의 자체 발표 내용도 한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법 집행기관이라고 하는 경찰에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부당한 명령과 지휘를 일삼는 경찰 수뇌부가 있는 한 순박한 형사들의 수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경찰의 치부를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엄정하게 잘잘못을 가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훈 사회1부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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