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바꿔치기'음주단속 수사축소 의혹

  • 입력 2003년 6월 27일 16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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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으로 적발되자 혈액채취를 요구한 뒤 다른 사람의 혈액을 경찰에 대신 제출한 종합병원 의사들이 법정 구속됐다. 또 경찰과 검찰은 이 사건을 축소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3단독 은택(殷澤) 판사는 27일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자 동료의사에게 부탁해 혈액을 바꿔치기한 경기 성남시 분당 C병원 의사 이모씨(33)와 이씨를 도와준 이 병원 과장 장모씨(38) 등 2명을 법정 구속했다.

또 이들을 도와준 혐의로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된 같은 병원 의사 김모씨(32)를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분당경찰서와 성남지청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6월 28일 오후 10시경 분당구 야탑동 야탑우체국 앞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현장에서 측정한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75%로,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이씨는 혈액채취를 요구했고 경찰은 이를 수용했다. 이씨는 곧바로 같은 병원 수간호사인 민모씨에게 연락해 혈액을 바꿔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당시 당직과장인 장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장씨는 김씨에게 이씨의 혈액을 다른 간호사의 혈액과 맞바꿀 것을 지시했고, 김씨는 정모 의사에게 간호사의 혈액을 뽑아 오도록 해 이를 경찰에 제출했다.

같은 해 7월 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경찰로 통보된 이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1%로, 첫 측정 결과와 큰 차이를 보였다. 경찰은 이씨를 추궁해 혈액이 바뀐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씨는 경찰에서 "간호사의 실수로 혈액이 바뀌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간호사를 상대로 당직 과장 등이 개입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같은 해 10월 이씨만을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이 사건에 가담한 나머지 의사 4명은 모두 '혐의 없음'으로 내사 종결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혈액채취시 경찰이 입회하도록 돼 있는 내부 지침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역시 5명 가운데 2명은 불구속 입건, 1명은 약식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려 더 이상의 수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당시 담당검사는 이와 관련 "기소 단계에서 사건을 재배당 받아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은 판사는 "죄질로 볼 때 불구속 기소는 너무 관대한 처분이라고 판단돼 법정 구속했다"며 "음주단속의 신뢰도를 높이고 의사 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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